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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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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는 3.1운동을 할 때 유관순 누나도 부른 노래입니다".한.일 월드컵 때 우리가 목이 터져라 불렀던 애국가는 3.1운동때도, 해방이 된 그순간에도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노래다. 현재의 애국가(안익태 작곡)가 만들어진 1936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애국가는 있었다.

그렇다면 애국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애국가가 즐겨 불리기 시작한 것은 갑오경장 이후. 1896년 당시에는 각 지방에서 불리던 애국가만 10여종에 달했다. 나필균 작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다.

그 중 새문안교회 애국가의 가사를 살펴보면 "높효신 상쥬님 ㅈ. 비론 ㅅ. 쥬님 궁휼리보쇼셔 이 ㄴ. ㄹ. 이 ㅅㄷㅏㅇ 을 지켜주옵시고 오쥬여 이 ㄴ. ㄹ. 보우 ㅎ. 쇼셔"이다. (높으신 상주님 자비로운 사주님 궁휼히보소서. 이 나라 이땅을 지켜주옵시고 오 주여 이나라 보우하소서)

1902년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는 영국 국가의 내용과 비슷하다. 주로 군악대에서 연주되다가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현행 안익태 작 애국가의 후렴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는 이미 배제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현재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에 이 가사를 붙여 불렀으나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국가로 준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는 "현 애국가는 3.1 운동 당시 민중항거를 상징하는 무기로 사용되었고 월드컵때도 불려진 만큼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국립대구박물관은 광복 57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7시30분에 '해설이 함께 하는 애국가 변천사' 강연회를 갖는다. 여러 애국가의 선율을 해설과 함께 들을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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