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갑.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일제시대의 한 지식인. 그가 남겨놓은 일곱 권의 신문 스크랩북과 철학적.종교적 논문 몇 편. 그리고 시 몇 수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여기서 일제시대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을 읽는다.
미시사의 고전이라 할만한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를 국내에 첫 소개하면서 우리 출판계에 미시사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서강대 사학과 백승종 교수가 그려낸 '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출판)은 한국사의 민중적 미시적 연구의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백 교수는 마치 나뭇잎의 잎맥을 현미경으로 구석구석 살피듯, 이찬갑의 일상적인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승훈(종증조부).조만식.김교신.안창호.함석헌 등 주변 인물과 사회적 관계, 그들이 이찬갑에게 미친 영향, 이찬갑이 소장했던 도서목록과 그가 살던 용동 가운뎃집 약도, 이기백.홍순명 등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에서 '작은 것 속에서' 역동적인 역사를 읽어내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것은 독일의 역사가 알프 뤼트게의 '일상 생활사', 즉 딱딱하고 분석적인 문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의 전말을 말로 풀어 나가는 듯한 '이야기로서의 역사'와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이 아니고서는 그 백성을 깨우칠 수 없다'는 그룬트비히(덴마크의 종교가.민족지도자)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이찬갑은 자신의 한평생을 바쳤다.
안창호.이승훈.조만식.우치무라 간조.간디.페스탈로치.피히테.그룬트비히의 삶을 통해 형성된 그의 정신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과 이익 그리고 나아가 이황과 이이 또는 주희와 맹자.공자에게로 소급될 수 있는 위대한 지적 전통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내가 교단에서 쓰러져 죽게 되면 가족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풀무학교 뒷동산에 세 길로 깊이 땅을 파서 그냥 선 채로 묻어라. 무덤도 묘비도 다 필요없다. 그 위에 한 그루 나무를 심어다오. 내 몸은 무럭무럭 자라날 어린 나무의 거름이 되리라".
이찬갑은 이처럼 조선의 '깊은 잠'을 일깨우기 위한 민중교육에 나섰고, 민족의 밝음과 맑음의 새 세상을 염원해 자신의 호를 '밝맑'이라 지었다. 그는 특히 토속적이고 아름다운 조선말을 사랑했다. 평민적 지식인 이찬갑. 그는 갔지만 그가 추구했던 자아혁신의 뿌리는 아직도 이 책을 통해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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