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구미시 임은동〉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소슬하다.
가끔씩 와보는 금오산, 고운 단풍잎이 제 먼저 계절을 알리려 두 서너잎이 발아래 내려와 앉는다.
한 잎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이다.
이 잎들이 봄에는 인고의 허물을 벗으며 싹눈을 틔웠을 것이며 그로부터 세 계절에 걸쳐 제 삶에 충실하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슬에 젖어 아침 햇빛을 영롱하게 반사시키던 봄빛 푸르름과, 신선한 산소를 내뿜어 삶에 지친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 주던 진초록 잎사귀를 병충해와 이 도시가 뿜는 온갖 공해를 정화시키며 서서히 붉게 물들면서 마침내 잎 낙엽이 되어 사라져 가는 나뭇잎을 보며 문득 아스라이 잊혀져간 유년의 시절이 떠오른다.
처마앞이 바로 도로인 유년의 집은 뜰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온갖 그릇에다 화초를 심고 가꾸셨다.
봄에는 씨앗의 싹을 틔우고 그 싹이 채소가 되어 밥상에도 올라오며, 여름에는 꽃잎을 따서 우리 형제 손톱에 꽃물도 들여 주셨다.
겨울 한 철은 화초가 좁은 안방에 우리 가족과 함께 동거하기도 하였다.
온 가족이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우린 모두 방안의 화초들에게 "집 잘보고 있으면 빨리 오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곤 했던 기억이 생상하다.
뜰 한뼘없는 집에서 살았던 내 유년 시절, 사시사철 꽃과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시며, 우리의 정서를 아름답고 풍부하게 살찌워 주셨던 어머니….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친정어머니가 몹시 그리워 진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내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우유곽에 사루비아와 들꽃을 심어 베란다에 두고 여름내내 아이들에게 물도 주고 가꾸어 보게 했다.
그렇게 가꾸던 화초에서 꽃이 피고 지고를 되풀이 하던 끈질긴 생명력 앞에 우리 아이들은 이 다음에 내 나이에 어떤 감성을 갖을까….
올해 추석은 유난히 달이 밝았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시골 할아버지댁의 마당 넓은 집을 좋아한다.
작은 아이는 자전거도 타고, 큰 아이는 고무줄을 묶어놓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 형제들과 고무줄놀이도 하면서 말이다.
올 추석에는 환한 달빛과 함께 저녁을 마당에서 먹었다. 마당위에는 멍석 대신에 넓은 대자리, 대자리 위에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었다.
솔솔 불어오던 바람도 밥상앞에 와서 잠들고, 이웃하는 처마에 찾아 온 산새도 잠시 날개를 접는다.
어스름 달빛에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들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싱그럽게 한다.
내년에도 온 가족이 넓은 마당에 둘러 앉아 달빛 저녁 만찬을 열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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