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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학교엔 동심 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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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천, 따 지…'. 예전의 서당은 학동들이 글을 읽는 낭랑한 목소리만으로도 지나는 이에게 청량함을 안겨줬다. 서당이 학교로 바뀐 지금, 대구 북구 문성초교에 가면 그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전교생이 시 읽기가 생활화된 학교, 모든 학생들이 동시 10편 쯤은 너끈히 외우는 학교, 좋은 시 읽기 준거학교로 지정돼 올 한해 운영해온 성과다.

지난 31일 마침 준거학교 운영 보고회가 열린다고 해 그에 앞서 학교를 찾았다. 뽀얀 먼지 속에 뛰어다니며 깔깔대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여느 학교나마찬가지였지만, 복도를 들어서니 색다른 모습이 보였다. 파란색 학습장 한 권씩 손에 든 어린이들. 학습장 제목은 '시의 숲에서 보물찾기'였다. 얼핏 펴 보니 장장마다 동시 한 편씩 어린이들의 손으로 쓰여 있고 그 옆으로 시를 읽은 느낌이 빼곡했다.

100여쪽의 학습장은 벌써 절반 너머 이렇게 채워져 있었다.이 학교 김동국 교장을 만나니 그같은 분위기가 이해됐다. 김 교장은 신춘문예를 거친 동시 작가로 동시 교육에 대한 논문으로 대통령상까지 받은 실력파. 지난해 시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좋은 시 읽기의 생활화를 역점 추진 과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김 교장이 올해 초 부임하자마자 한 일은 시 읽기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 그 결과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조차 시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행가는 5, 6곡씩 외워도 교과서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암송하는 어린이가 드물었습니다. 교사들도 관심은 높으나 시 지도가 어렵다는 선입관이 뚜렷했습니다.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우선 자체적으로 교사 연수부터 시작됐다. 교사들이 공감하지 않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 아울러 시 낭송 지도 자료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5월과 10월 공개수업일에 학부모 연수도 열렸고 인터넷 교실에도 학부모 100여명이 참가했다.

어린이들에게는 학년별로 좋은 시 30편씩을 선정해 일주일에 한 편씩 옮겨쓰기-느낌 표현하기-암송하기의 3단계로 나눠 익히도록 했다. 좋은 시 작품 120여개가 액자에 담겨 복도, 화장실 등에 걸렸고 2천100여권의 동시집이 교실에 비치됐다. 2학기부터는 매주 토요일 아침 방송을 통해 시 감상 시간이 운영되고 있다. 방송반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두 학기째를 맞자 학생들의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 한편 변변히 못 외우던 어린이들이 평균 9~15편씩 암송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시 학습장 쓰기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도 70%를 넘었다.

말로만 들어서는 확인하기 힘든 결과라 학교 홈페이지(www.tgmunsung.es.kr)를 열어봤더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시 읽기 교육 코너인'시의 숲에서 보물찾기'에는 그야말로 보물들이 가득했다. 가장 붐비는 곳은 자신이 지은 동시를 직접 올리는 '장미 시 동산'. 지난 6월 이후4개월여만에 500편이 넘는 동시가 올라와 있었다. 편편이 싱긋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동심이 녹아든 글들이었다.

작가들의 동시를 읽고 느낌을 쓰는 게시판 역시 어린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들과 선생님의 답글로 빼곡했다. '눈의 지은이는 녹을 줄 아는 눈의 마음이 따뜻하다고 나타냈다. 내가 본 눈의 세상은 이렇다.

처음엔 눈이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동안 낀 이물질을 말끔히 씻어내려주고, 하늘에서내려올 때 사람들에게 보는 기쁨을 주고, 땅에 착륙하여 눈사람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 주고, 때가 되면 땅에 스며들어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기쁨이고 영물이다'(3학년3반 김은하) '눈에 대한 은하의 생각이 아주 훌륭하고 멋지구나. 앞으로도 동시를 통해 너의 생각을넓히도록 하렴'(김경자 선생님)

한 걸음 더 나가 시인이 쓴 시를 바꿔 써 보는 어린이들도 보였다. '울타리 너머/무엇이 있나/엿보다가/눈동자만/그렇게 새까매져 버리고라는 해바라기 시의 2연을 바꿔 써 보겠습니다. 구름을 너머/저것이 뭔가/지켜 보다가/그렇게 시들어져 버리고'(김민기).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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