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분권 이룩...대선후보에 바란다

행정과 지방자치 분야의 개혁 방향은 한마디로 '지방분권'이다. 프랑스 사회당 정권은 1982년 지방분권법을 시행하면서 그것을 '조용한 혁명'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부터 시행한 지방분권추진일괄법을 메이지유신과 전후 민주개혁에 이은 '세 번째의 세기적 전환 사업'이라 불렀다.

많은 OECD국가들이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 재구조화를 주요 개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며, 그것에 '혁명'이라든가 '세기적 전환 사업'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배경이 무엇인가를 대통령 후보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지방분권은 '시대정신'이다.

어떤 논객들은 지방분권이 더 우선 과제인가 지방자치가 더 우선 과제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쟁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분권 없는 자치가 어떻게 있을 수 있고 자치 없는 분권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분권 없는 자치는 공허(空虛)하고 자치 없는 분권은 맹목(盲目)이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깨우치고자 한다. 문제는 어떤 분권이냐는 것일 뿐이다.

지방분권에는 두 가지 비전이 있다. 하나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비전이다. 행정 개혁 차원에서 중앙 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과 함께 행정 서비스의 민영화, 조직의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압력과 국가 재정 위기에 대응하는 구조 개혁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성을 추구하는 참여자치적 비전이다. 지방의 조직, 인사, 재정 자주성을 강화하는 한편 주민소환, 주민발의와 같은 제도 등을 통하여 지방주민의 민주적 참여를 외연적으로 확대하고 내포적으로 심화하는 개혁을 말한다.

효율성과 민주성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가 지방분권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참여자치적 비전이다. 지방분권은 경쟁력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킬 때만 의미가 있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면 지방자치를 경영적 기술합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주민의 복리는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참여 확대와 심화 없이 중앙의 권한을 그저 지방에 넘겨주는 분권이라면 그것은 '지방 관료와 기업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성장연합 즉 지역 토호들을 위한 헌화(獻花)'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지역을 드나드는 대통령 후보들은 하나같이 지방분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믿지 않는다.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들의 인격이 아니라 중앙집권 세력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지방분권을 방해하고 나설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은 지방분권에 대한 비전과 목표, 실천 과제는 물론 추진 전략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특히 중앙집권과 서울집중 체제에 기생하는 정치인, 관료, 언론, 재벌 등에 대한 '저항 관리'를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방안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저항관리' 능력이야말로 개혁을 추진할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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