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대권도전 실험은 대선출마선언 69일만에 '후보단일화'라는 벽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정 후보는 지난 9월17일 "정치개혁에 몸을 던져야겠다는 소명의식에서 대선출마를 결심했다"며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그는 10월1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연 데 이어 11월5일 통합21 창당대회를 열어 대선후보로 선출돼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섰다.
한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웃돌던 그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지원설 등으로 공격하고 나서면서 떨어지기 시작,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고 정 후보는 마침내 민주당 노 후보와 단일화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노 후보와의 단일화협상에 착수했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합의한 정 후보는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조사결과 노 후보와 적잖은 격차를 보이자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25일 0시10분은 그의 대권도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6월 월드컵 4강신화를 바탕으로 '정풍'을 거세게 불러일으키면서 붉은 악마의 구호처럼 '꿈★은 이루어진다'며 대권도전에 나섰지만 선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또 다시 대권의 꿈은 좌절됐다. 그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후보단일화라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사실 정 후보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대선출마선언을 전후한 시점에 정 후보의 지지율은 30%를 웃돌았지만 그는 세확보에 실패했다.
그는 민주당 반노비노세력은 물론 자민련 등과 여러차례 '4자연대'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박근혜 의원을 영입하는데도 실패하는 등 정치력과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현대그룹과의 관계 등도 그를 괴롭혔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회장이 제기한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관련 의혹은 정 후보와 현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못했다. 이로부터 두텁게 보이던 그의 지지층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혁명을 꿈꿨지만 현실적인 지지세력이 없는 그에게 선거혁명은 극복하기 어려운 '꿈'이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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