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류 그 현장-(1)대중음악

"우린 세 명의 성격 활발한 소녀들입니다.

~ 우린 한국음악광이랍니다.

H.O.T와 S.E.S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연락주세요"(成都市祈路北二街277棟11-12號 T.O.G). "N.R.G와 강타! 우리의 맹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겁니다.

영원히 사랑해요.... 기다릴게요"(天津市南開區南大附中 文炫). .

중국 연예잡지 '청춘의 별(靑春之星)'12월호 중'한풍연맹(韓風聯盟)'코너에 실린 팬레터들이다.

자신들의 우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한국의 10대들과 다를 바 없다.

한류(韓流)! 어느날 갑자기 중국 대륙을 달구었던 한국붐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지난 12월 찾아가 본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인구 1천300만명의 국제도시 곳곳에서 한국노래와 드라마 영화, 음식, 패션 등과 그리 어렵잖게 마주칠 수 있었다.

최근엔 한풀 꺾였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류는 아직도'~ing 시제'였다.

그러나 거기엔 낙관과 우려감이 함께 교차되고 있었다.

라오바이싱(老百姓: 일반 국민)들의 일상 속에 녹아드는 한류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 긍정적 측면이라면, 자칫하면 잿불꺼지듯 한국붐이 일시에 사그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대학가 슈에위엔루(學院路)의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에 있는 한 작은 잡지가게. 주인에게 한국 관련 잡지가 있느냐고 물으니 "당연하지"라며 몇 권의 월간 연예잡지를 골라낸다.

'靑春之星','娛樂無限','Easy','嶺南音樂'.... 놀랍게도 표지부터가 한국 일색이다.

전 H.O.T의 강타 문희준을 비롯 보컬그룹 신화, N.R.G와 J.T.L 등 표지모델 모두가 한국 가수들. '全部哈韓(전부 한국마니아)', '純韓時尙(순 한국풍조)','最紅韓國8大組合(최고 인기 한국 8대 그룹)'등의 선전 문구와 함께 한국 가수들 이름이 빼곡하다.

베이징 시내 옌샤백화점 부근의 고급맨션 쟈허리위엔. 왕(王)이라는 성의 19세된 경비원은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발음으로 인사를 해왔다.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느냐고 물으니 "안자이쉬(安在旭)의 노래를 좋아해요. 그래서 한국어도 몇 마디 배웠지요"라고 답했다.

지난 97년 TV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를 앞장세운 드라마 행진으로 중국의 안방을 노크한 한국 대중문화는 2000년들어 댄스뮤직이 중국 청소년들의 귀를 사로잡으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해 2월, H.O.T의 베이징 공연은 현지인들에게 일대 충격이었다. 5명 아이돌(idol) 가수들의 종횡무진 춤과 노래에 10대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중국명: 星夢奇緣)'로 중국 안방을 강타한 탤런트 겸 가수 안재욱의 공연, N.R.G의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공연 등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현지 매스컴들도 부쩍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 대중음악이 뭐길래 이 소동인가?"하면서.

이들 선두주자들의 성공에 힘입어 J.T.L, 베이비 복스 등 가수들이 줄지어 중국 대륙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1년엔 대도시를 중심으로 16차례나 콘서트가 열렸다.

한때 일본 마니아인 '하르쭈(哈日族)'가 활개쳤으나 최근엔 한국 마니아인 '하한쭈(哈韓族)'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팬 클럽을 만들어 공항에서부터 공연장까지 따라다니며 시끌벅적하게 열광한다.

한국 가수에 대한 중국 청소년들의 동경은 "느리고 애상적인 중국 노래와 달리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것이 그 이유. 랴오닝(遙寧)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는 23세의 우핑은 "한국 음악은 경쾌해서 기분이 좋아진다"며 한국 가수의 CD를 50개나 갖고 있다고 했다.

가사의 뜻을 알고자 한국어까지 공부한다니 분명 하한쭈.

또한 CCTV와 함께 전국을 시청권역으로 하는 중앙인민방송(CNR)은 지난해 9월부터 매일 오후6~7시 프라임타임에 한국음악 프로그램 '한국을 들어보세요(聆聽韓國)'를 내보내고 있다.

교민업체인 (주)우전소프트가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월(한국 가수 소개), 화(추억의 가요), 수(한국문화), 목(팬 레터), 금(SBS 인기가요), 토(토크쇼) 등 요일별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중앙인민방송의 전체 팬레터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프로이다.

중국 연예잡지에는 이정현, 유승준, 클릭- B, K-Pop, 박지윤, 보아, 안칠현, 안나, 하리수 등 점점 더 많은 한국가수들이 등장하고, 한국 노래광인 꺼미(歌迷)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으로만 보이기 쉬운 한류의 뒷면엔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2001년에 열린 20회 가까운 공연은 대부분 실패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는 공연이 뚝 끊어졌다. 지난 9월 N.R.G의 청뚜(成都) 공연, 11월 J.T.L의 난닝(南寧)공연, 강타와 문희준, 보아, 안칠현 등의 11월 항쩌우(杭州)공연 정도에 그쳤다.

한류에 은근히 거부감을 갖고 있던 중국 매스컴들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베이징띠엔스빠오(北京電視報)는 한류 비판 시리즈를 게재하면서'원래 한류(韓流)란 구름이나 연기처럼 금방 사라져 버리는데 불과한 것'(2002. 11. 22) 등으로 폄하했고, 베이징칭녠빠오(北京靑年報)는'한류의 길, 의문에 부딪히다'(2002. 7. 29) 등의 제목으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해부했다. 일부 중국인들중엔 요란스런 한국 대중음악을 '쓰레기문화'로 질타하기도 한다.

한편 현지교민들은 중국 공연 경우 한국측이 성공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공연권 따내기가 쉽지않고 스폰서 구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반면 중국측 파트너에겐 수천만원씩의 대행료를 줘야 한다. 100(한화 1만5천원)~500 위안(7만5천원)선의 티켓값도 주수요층인 10, 20대에겐 고액이다. 결국 한국측은 흥행에 실패해도 중국측은 대행료를 챙기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 여하튼 중국 대륙의'한류'는 한-중간 새로운 문화코드로 나타나고 있다. 이 통로를 넓히느냐, 아니면 막아버리느냐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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