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가장 심취한 분야는 무엇이었을까?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같은 불후의 명작을 그린 만큼 그림 분야가 아니었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체 비례를 연구하고 비행기·낙하산 설계도를 남긴 것에 미뤄 과학 분야가 아닐까.
그의 특기가 '요리'라고 한다면 얼핏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레오나르도 다 빈치 씀·책이 있는 마을 펴냄)에서 보듯 실제 그는 그림을 팽개치고 요리에 온갖 열과 성의를 쏟아부은 인물이었다.
과자 제조업자인 의붓아버지로부터 단 맛 취미와 요리에 대한 열정을 전수받은 그는 베로키오에게 그림을 배우면서도 피렌체의 '세마리 달팽이'라는 유명한 술집에서 접대부로 일했다.
그는 21세에 주방장으로 승진하면서 복잡한 요리를 단순화하는 '혁신적인' 요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외면당하고 쫓겨나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지만, 자신의 생을 요리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다빈치는 1478년 친구 보티첼리와 술집을 개업하면서 또다시 요리 개발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그후 3년동안 요리사로 취직하려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1482년 힘겹게 밀라노 루도비코 궁정 연회담당자 겸 축성위원회 자문으로 취직한 그는 영주의 여흥을 위해 노래하고, 만돌린을 치고, 수수께끼를 내는 '광대'역할을 하면서도 요리와 주방의 효율성, 조리기구 연구에 집중했다.
그때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요리와 식사예절, 식습관, 요리법, 주방의 개선점, 발명해야 할 조리기구 등 음식문화 전반에 대해 꼼꼼히 기록해놓았다.
실제 그는 짐승도살장치, 냅킨 건조대, 빵 자르는 장치, 병마개꽂이, 소를 잡는 기구, 마늘 빻는 기구, 스파게티용 면발을 뽑는 장치, 삶은 계란 자르는 장치, 온수 보일러용 장치 등을 고안하거나 발명했다.
이들 요리기계는 주방에 사용되지 않고, 훗날 전쟁무기로 만들어져 적군을 죽이는데 사용됐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빈치가 요리책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무슨 재료를 준비하고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써놓은 대목에 이르면 어쩐지 웃음이 앞선다.
화가로서의 선입견이 워낙 강하기 때문. 실제 그는 그림을 자신의 이름을 얻는 수단일 뿐, 따분한 작업이라 여겼다.
산타 마리아의 수도원에 있는 걸작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도 그는 그림을 완성하지는 않고 제자·하인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고 식탁 요리 꾸미기에 시간을 다보냈다.
그림에 전념하지 않았음에도 불후의 걸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는 말년에도 식도락가였던 프랑스왕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스타게티를 발명하고, 함께 식도락으로 3년여를 보내다 사망했다.
그가 남긴 요리비법은 현재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500년전에 유행하던 요리는 요즘에는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조리법과 귀한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 종달새 혓바닥 요리, 빵가루 입힌 닭볏 요리, 타조알 스크램블 요리, 꿀과 크림을 곁들인 새끼양 불알 요리, 발가락 모둠 요리, 속을 채운 동면쥐 요리…. 엽기적인 수준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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