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보급 선양운동 대구광역시협의회 김희주(66) 회장은 농부다.
칠곡의 작은 포도밭에서 나오는 수입을 몽땅 태극기 보급에 쓴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던 1980년 당시엔 섬유공장을 운영했다.
회사를 처분하고 땅을 처분해 마련했던 1억원 남짓한 돈을 몽땅 태극기 보급에 썼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재산을 다 털어 가며 태극기 보급에 열을 올리는가? 혹시 표창장을 기대하거나 지방 선거에 출마할 요량인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재산은 꽤 많은 모양이지…'. 김희주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번쯤 그런 의혹을 품는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 20평 남짓한 흙담집에 노모를 모시고 산다.
몇해 전 불이 나 서까래까지 타버린 집을 칠 한번 하지 못했고 안방 천장은 푹 꺼지듯 무너져 방에서는 허리를 펼 수 없다.
그 흔한 휴대전화도 없다.
고물차 한 대가 있기는 하지만 세금을 못내 번호판을 떼이고 집 언저리 담벼락 아래에 처박혀 몇달째 삭는 중이다.
가진 재산을 다 썼고 지난해엔 칠곡 포도밭을 담보로 돈을 빌려다 태극기를 제작, 보급했다.
김씨는 집 수리할 돈이 있으면 태극기 한 장 더 사서 보급하겠다는 사람이다.
태극기 보급 선양회 회원들의 회비와 약간의 후원비로는 행사비에도 턱없이 모자랄 판이었다.
1980년 태극기 보급 운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활기차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김희주씨의 눈물겨운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삶과 재산을 몽땅 들여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아까울 게 없다고 말한다.
김희주씨는 자신이 태극기에 몸바치는 동안 희생해야 했던 자녀들과 형제들의 서운함을 안다.
그러나 "너희들은 너희대로 할 일이 있고 나는 내 할 일이 있다"고 잘라 말할 뿐이다.
김희주씨가 그렇게 아등바등 애쓴 결과 대구의 거리엔 태극기가 휘날리게 됐다.
그러나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김씨는 "이게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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