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가 걱정속 로또 화제 만발

전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3일까지 귀가 전쟁을 계속해야 했던 이들은 고향 집에 모여 앉아서도 경제 위축과 기름값 상승을 걱정했고 너나 없이 수백억원대의 로또복권을 화제로 삼았다.

이번 달엔 사실상의 첫 '평민 정권'이 출범하는 시기여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았으며, 대북 거액 지원설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많았다.

◇물가 불안 심각=미국의 이라크 침공설과 북한 핵 위기로 인한 '2개의 전쟁' 동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서민들의 불안감이 유가인상으로 모아졌다.

고향 대구를 찾은 서울의 최정식(52)씨는 "휘발유 값이 많이 올라 나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라며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 기름값이 더 오른다니 큰 걱정"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온 최태호(57)씨는 "설 이후 기름값이 또 오른다니 다른 물가도 덩달아 오르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라며 "서민들로서는 또다시 허리를 졸라 맬 수밖에 없게 됐다"고 긴 한숨을 뱉었다.

대구의 이동수(35.대명동)씨는 "기름값이 너무 올라 도시가스 보일러로 바꾸고 싶지만 그마저 설치비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런 불안감 때문인지 동창회.계 등 설을 이용한 모임도 예년보다 많이 줄었다.

고향 청도를 찾은 강신형(34.서울 신림동)씨는 "동창회 등 3, 4개에 달하던 모임이 올 설에는 하나도 없다"며, "어려운 주머니 사정때문에 솔직히 연락이 올까봐 겁이 났다"고 했다.

조대현(40.청도읍)씨는 "친구들과 만나 고스톱 치는 것도 시큰둥했다"고 했고, 최유정(7.청도 화양읍)양은 "세뱃돈이 작년의 절반인 2만원밖에 못받았다"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로또복권 화제 만발=이번 설 최고의 화젯거리는 단연 로또복권. 주부 박옥자(54.여.대구 대명동)씨는 "맨날 정치.경제 이야기 해 봐야 나아지는 것도 없더라"며 "평생 복권이 뭔지 모르고 살았으나 이번 설에는 아들한테 로또복권을 1만원어치 사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부산의 양광옥(54.여)씨는 "이번 설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보다 '로또복권 샀느냐'는 말을 더 많이 들은 것 같다"며 "도대체 그게 뭔가 싶어 1만원어치 샀다"고 했다.

부산의 김백규(31)씨는 "전에는 양말이나 식용유 같은 것으로 설 선물을 했으나 올해는 큰 복 받으라는 뜻에서 로또복권을 사 선물했다"고 했다.

이장한(52.대구 동인동)씨는 "복권에 관심 없었으나 이번 설엔 평생 처음 10만원어치나 샀다"고 했다.

서진숙(38.대구 동인동)씨는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로또에 대해 묻는 실정"이라며, "애들까지 한탕주의에 물드는 게 아닐까 걱정"이라고 했다.

설 연휴 로또 열풍으로 연휴 전날인 지난달 30일 국민은행 대구 공평동지점에서만도 로또복권이 250만원어치나 팔렸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노 당선자에 대한 기대=노 당선자 행보도 중요한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다는 이종숙(41.여.대구 대곡동)씨는 "노 당선자가 서민적이고 합리적인 인상을 줘 불신 받는 정치는 물론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했다.

자영업자 최동기(58.대구 대명동)씨는 "지난 선거 뒤 노 당선자에 대한 우려가 많았으나 이젠 젊은 사람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선 때 민노당에 투표했다는 이주원(54.대구 반야월)씨는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드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고 했다.

서울 중앙부처의 한 고위직 공무원은 "고향 대구에 와 친구들을 만났더니 50대까지도 점차 기대를 갖기 시작한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중앙부처 근무자 중에는 호남 출신들이 그런대로 좋아하고 경남 출신들은 희색이 만면한 반면 대구.경북 출신들은 위축돼 있긴 하나 당선자의 워낙 정직한 행보 때문에 기대를 갖자고 서로 격려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 외의 관심들=대북 '4천억 지원설'도 많이 설왕설래 됐다.

포항의 이창동(48)씨는 "김대중 정권의 북한 퍼주기가 사실로 확인됐다"며 "돈으로 산 평화는 돈이 없어지면 무너질 사상누각"이라고 걱정했다.

반면 경기도 철원에서 경주의 고향을 찾은 주부 손해영(36)씨는 "햇볕정책의 핵심이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이라며 현금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농촌에서는 갈수록 어려워진 농업 경영에 대한 걱정이 화제가 됐고, 건강과 운동에 관한 얘기들도 많이 오갔다.

대구에서 설 아침 탔던 택시의 운전기사는 자신이 새벽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이 음력 새해를 맞으면서 느끼는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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