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여자

내 전생의 저 여자

부엌 칸 부뚜막에

암코양이처럼 걸터앉아

막걸리 한 사발

꿀물 마시듯 꿀떡꿀떡

시퍼런 김치줄기에 돼지고기 보삼해

야무진 입매 다시는

나무비녀 쪽진 머리

푸르죽죽한 낯빛의

눈꼬리 샐쭉한

소복의 저 여자

조붓한 어깨 들썩이며

아이고 아이고

진양조 단조로

어수선한 상가 분위기

휘어잡고 있는

저 여자

울음을 웃음처럼

갖고 노는

내 전생의

여자

이명주 '곡비(哭婢)'

조선시대 상가에서는 울음을 전문으로 팔며 살아가는 여자 노비가 있었다.

그런 노비를 통해 상가의 슬픈 분위기를 고조 시켰던 것이다.

울음을 웃음처럼 팔고 다녔던 그 여인을 시인은 자신의 전생이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체, 정직한 체 심각한 표정(울음)을 띠는 우리 모두 표정을 전문적으로 갖고 노는 현대의 곡비인지도 모른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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