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SK 사태여파 기업 자금줄 막혀

경제의 '혈맥'인 돈줄이 꽉막혔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기업 자금조달 창구역할을 하던 채권시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마비상태에 빠지고 90조원에 이르는 카드채 문제까지 겹쳐 기업들의 자금시장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 금융시장 기능을 못하는 채권시장.

회사채 유통시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이후 '기업자본 조달시장'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국고채만 간간히 거래될 뿐 회사채 수요를 찾기 힘들어졌다. 특히 카드채 거래는 거의 중단돼 연 7%의 이자에도 매수하겠다는 주문이 자취를 감췄다. 기업어음(CP),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SK글로벌 사태로 기업 건전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며 금리를 얹어주고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형편. 자금사정이 나쁜 것으로 소문난 일부 대기업들은 채권발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우량기업들도 발행금리가 상승하는 바람에 채권발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지역 기업들은 외부에서 조달하는 자금 중 90%이상을 은행에 의존하며 1% 미만을 기업어음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대구은행 김종수 자금팀장은 "지역에선 2~3년전까지만 해도 회사채를 발행,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간혹 있었으나 최근에는 SK사태 등의 영향으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으로 지역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지역 301개 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자금사정BSI는 77로 작년 4분기 89보다 크게 하락했다. 기준치 100에는 크게 못미치는 수준.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조태진 기획조사과장은 "경기 불확실에 따른 매출 감소 및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들의 외부 자금수요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은행 차입 등 전반적인 자금 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 카드채 관련 자금흐름 악순환

금융감독원과 채권시장에 따르면 올해 카드사들의 전체 채권 만기 도래액은 카드채 11조3천억원을 비롯해 기업어음 18조8천억원, 자산유동화증권(ABS) 11조5천억원, 은행 차입금 3조6천억원 등 모두 45조2천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 중 1분기 만기도래액은 19조7천억원, 2분기 10조3천억원 등이며 지난달말까지 카드사들은 카드채 발행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만기 상환한 자금만도 3조원을 넘어섰다.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이나 자금난에 허덕이는 투신사가 너나없이 만기 채권에 대한 차환이나 기간 연장을 해주기 않기 때문으로, 카드채를 매개로 한 자금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카드사들은 이같은 만기 상환부담과 꺾이지 않는 연체율로 경영난을 겪고 있고 투신사들은 카드채 거래부진과 지속되고 있는 MMF(머니마켓펀드) 환매로 역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투신권 환매규모는 지난달 31일 7천억원에서 지난 1일에는 9천억원가량으로 다소 증가해 환매사태의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

▨ 투자를 기피하는 기업들.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이 앞다퉈 은행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크게 둔화된 반면 기업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구은행 경우 지난 달 28일 기준 기업대출은 5조3천726억원, 가계대출은 2조6천917억원. 2002년 말 기업대출이 5조1천4억원, 가계대출이 2조6천738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석달 동안 가계대출이 0.6% 증가에 그친 반면 기업대출은 5.3%나 늘어났다.

전체 은행권에서도 지난 달 대기업 대출이 2조2천385억원 증가, 2월 6천587억원이 감소한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도 지난 달 4조원이나 증가, 2월 2조2천756억원에 비해 70% 이상 증가했다.

금융권은 기업들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현금보유 욕구가 커진데다 SK글로벌 분식회계와 카드채 문제 등으로 기업어음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은행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역 기업 한 관계자는 "여기에 금융권이 여신심사를 엄격히 하는 등 앞으로 '돈줄'을 죌 것을 우려, 미리 현찰을 확보해 놓으려는 의도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기업들은 대부분 운영자금으로 일반대출을 받아갈 뿐 설비투자금 용도는 거의 없는 실정. 금리가 여전히 낮은 상황이므로 만일을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해 두려는 목적이란 얘기다. 경제전문가들은 "투자할 곳을 못찾아 시중에 떠도는 자금이 330조원에 이르는데도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속출하는 왜곡된 경제흐름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기업들은 투명성 제고와 함께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정부는 돈이 적정한 곳에 투자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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