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무직·방랑·주벽(酒癖)·기행(奇行)이라는 '관'을 쓰고 다녔던 천상병(千祥炳·1930~93)은 하루 담배 한 갑과 버스비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인이다.
커피와 막걸리 몇 잔만 마시면 금상첨화였다.
마흔이 넘어 마음씨 착한 여인을 만나 늦장가를 든 그는 의정부의 한 셋방에 살 때가 황금기였다.
부인은 매일 서울 인사동의 조그마한 카페 '귀천(歸天)'으로 출근하기 전에 막걸리 두 병과 담배 한 갑을 챙겨 주었다.
부인이 돌아오기 전에 술과 담배가 떨어지면 야단을 맞고 심심해서 천천히 마시고 피웠다.
그는 '천상 시인' '천상 술꾼'이었다.
▲세속적인 눈엔 광인·괴물로 보이기도 했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두 번의 죽음에 진배없는 고통을 겪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전기고문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71년엔 행방불명된 유고시집 '새'가 문우들에 의해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겼다.
▲그의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 행사가 마련되는 모양이다.
21일부터 5월 31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원고·편지 등을 모은 유품전이, 27일엔 의정부공원 묘소에서 추모제가, 같은 날 의정부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선 소리꾼 장사익씨 등이 출연하는 추모공연과 시낭송회가 열린다.
그의 삶을 뮤지컬로 제작한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도 하반기에 공연되며, 미국 뉴욕(6월 21일)과 캐나다 토론토(6월 22일)에서도 교포 문인들이 추모 행사를 열 예정이다.
▲가난과 주벽과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고, 죽음마저 친구로 반겼던 그였지만 올해는 전에 없이 큰 대접을 받게 되는 셈이다.
특히 큰 선물은 소설가 천승세씨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실록소설 '천상병-괜찮다 이제는 다 괜찮다'의 출간(5월 초)이다.
생전에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천씨는 "천상병은 천재였을 뿐 아니라 평화주의자였고 낙천주의자였다"며, 이번 실록소설은 화석화된 한국문학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작업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인간의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파멸을 부르며, 세상을 병들게 한다.
천상병의 시 '귀천'은 그런 의미에서 새삼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굳이 가난과 기행을 예찬하는 건 아니지만, 마치 인생을 장난하듯 천진난만하게 살다 간 기인들의 생애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각박한 우리 사회의 잃어버린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욕망으로 일그러지고 있는 오늘의 세태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