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처녀시절 생각이 난다

비 맞고 서 있는 나무처럼

마음 젖어 서러이 흐느끼던 그때

비오는 날이면

처녀시절 생각이 난다

박쥐우산 하나를 바람막이로

용감하게 세상을 밀고 가던 그때.

허영자 「비오는 날」부분

처녀시절 마음이란 암사자와 나비와 남십자성을 한꺼번에 지닌 것이 된다.

때로 비에 젖은 플라타너스일 수도 있고 안개비에 쌓인 비애일 수도 있다.

누구인지는 모르나 어떤 부름 때문에 마침내 정열 하나로 폭우 쏟는 길을 예고 없이 내닫기도 한다.

박쥐우산 하나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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