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사고의 도시에서 생명의 도시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김준태 시인은 절규했다.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광주는 결국 우리 나라의 십자가가 되었다.

'자유와 인권'의 집합적 표상이 되었다.

2003년 2월 대구에서는 지하철 화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광주의 죽음이 신군부의 폭력에 의한 것이었다면 대구의 죽음은 이른바 압축성장의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이었다.

오로지 양적 팽창만을 위해 모든 것을 대충대충 해치우며 살아온 우리의 무책임이 낳은 희생이었다.

물질적 가치만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온 우리의 탐욕이 낳은 속죄양이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 때 그 자리에 왜 내가 있어야 했는가? 어둠 속의 절규가 들린다.

우리를 대신하여 세상을 떠난 그 분들의 원통함을 풀어야 한다.

그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광주가 1980년 5월의 분노를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켰던 것처럼 나는 대구가 2003년 2월의 슬픔과 절망을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죽음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나는 대구가 사고의 아픔을 '생명과 안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기를 희망한다.

수 년 전 우리 지역 사회를 뒤집어 놓은 페놀사건이나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의 가스폭발 사건, 그리고 이번 중앙로역 지하철 화재 사고는 우리에게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거듭 일깨우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마음과 마음을 모아 '저항'의 이미지를 '자유와 인권'의 도시로 만들어 갔던 것처럼 대구 시민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사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사업의 방향은 이런 테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추모사업은 희생자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지역사회 전체가 맡아야 할 일이다.

뜻을 담을 수 있는 추념의 공간도 만들어야 하고, 우리 지역 사회의 학교 교육 과정에는 이 사건의 의미를 새기는 프로그램도 만드는 것이 좋겠다.

내면의 고통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빨리 잊고 싶지만 이 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슬픔을 무작정 잊으라고 하지 말자. 나는 우리 지역에 예산을 많이 끌어오고 벼슬자리를 얻어내고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는 식의 '민심수습'에 찬성할 수 없다.

그러한 일들이 사건으로 생긴 마음의 상해를 아물게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부상당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그대로 둔 채 도대체 누구의 마음을 수습하겠다는 것인가? 섣부른 '국면전환'을 경계한다.

사고가 난 지 수 십 일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이 아직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