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젊은 그들

주말 밤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 가보면 그곳은 축구장이 아니라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인의 훈련 장소로 변해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

검은색 유니폼을 맞추어 입고, 헬멧을 쓰고, 육체의 건강함을 한껏 뽐내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젊음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아, 우리는 그들과 같은 젊은 시절에 무엇을 했던가. 매캐한 최루탄을 피하여 골목을 도망쳐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교문 앞은 탱크가 점령하고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으면 우리는 울분을 삭히려 대낮부터 술집으로 향했다.

밤에 대낮처럼 환한 조명을 밝히고 운동을 하며 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밤이 되면 향촌동의 뒷골목에 모여들어 고작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 시대의 낭만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때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아무리 좋아해도 교정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배짱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이제 서로 커플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캠퍼스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같은 연도에 입학한 동기일지라도 이성에게는 누구누구 씨라면서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요즈음에는 같은 학번이면 남녀 사이에 서로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한다.

전화조차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친구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친구 집까지 먼 길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수업 시간 중에도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재를 파악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대거나 휘파람을 불며 신호를 보내는 모습은 이제 빛 바랜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

실시간 접속이 가능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애틋한 마음으로 몇 시간씩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슴 설렘을 알기나 할까가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를 보면 배워서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도무지 그 속도감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려면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매트릭스' 같은 영화도 보고 노래방에서 그들이 부르는 최신 가요도 불러보려고 애 쓰지만 숨이 차서 헉헉거릴 뿐. 시간이라는 날개 달린 마차를 정지시킬 방도는 없는가.

허정애 상주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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