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군! 나는 시 몇편 잘 썼다고 시인을 맨들어줄 수는 없네. 자네 알제? 보게.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을 해준 사람이 기백은 되지러 아마, 그중 아직도 시 쓰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도 못 꼽아. 문학을 전공하고 시인 된 시인들도 힘들면 언제 시를 썼나 싶게 시를 버리는데…".
시인 유안진(62.서울대 아동학 교수)씨가 에세이집 '바람편지'(중앙 M&B)에서 자신을 문단에 등단시켜준 고(故)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박목월 시인이 시인의 추천에 무척 엄격했음을 들려주는 일화가 흥미롭다.
"유군은 국문과 나 영문과도 아닌데,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시인은 박목월 시인의 '인색함'에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절대로 날 추천해주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습작원고를 보여드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책방에서 '현대문학'을 보고 추천이 된 것을 알았다"고 떠올렸다.
시인은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선생님은 훗날 그가 어떤 시를 어떻게 얼마나 오래 쓰며 죽기까지 시인으로 살 것인지를 짚어보고 헤아려보신 다음에야 추천해주셨다.
어떤 시인은 추천받는데만 11년이 걸렸고 어떤 제자는 선생님 댁 대문을 발로 박차고 울부짖으면서 다시는 이 문간을 넘어서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나왔고 어떤 이는 박목월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 끼쳐했다".
시인은 "근년들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면서 다시 선생님의 시를 통독하게 되었는데, 지금 내가 실험해보고 싶은 '명사들로만 쓴 시' '동사들로만 쓴 시''형용사나 부사만으로 쓴 시' 등을 시도하면서, 전에는 무심히 읽고 지나쳤던 '불국사' '청노루' '나그네' 등에서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 청년기에 시도하셨음에 새삼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첫인사를 드린 날 화신백화점 앞의 설렁탕 집에서 선생님 앞에 있는 소금 그릇을 끌어오지 못하고 맨설렁탕을 먹는 나를 보시고 '저리 숙맥 같으니. 시는 잘 쓰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는 말씀을 지금도 자주 들려주실 수 있었으면 어리광도 부리듯 깔깔댈 수 있을텐데"라며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인은 몇년전 박목월 시인을 문단에 추천해준 정지용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상을 탔는데 "그때도 살아계신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의 은사이신 정지용문학상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며 아쉬워했다.
에세이집은 이밖에 시인이 관심을 두어온 민속에 관한 이야기와 신문잡지 등에 연재됐던 한국여성에 관한 글 등 여러 글편을 모았다.
요즘 시인은 내년봄 출간예정으로 시집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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