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작은 씨앗 하나가

올 봄에 스티로폼 박스 속에 흙을 담아 호박씨 두 개를 묻었다.

싹을 내민 호박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줄을 매어줬더니 손바닥 같은 푸른 잎사귀를 매달고 허공을 더듬으며 넝쿨을 뻗었다.

호박넝쿨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간절하게 내미는 손가락처럼 보인다.

그 작은 씨앗 속에 화약 같은 푸른 넝쿨의 힘이 숨어 있었다니.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양팔장애인 운전면허증 취득 법제화를 끌어낸 박재현씨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그는 선천성 뇌성마비로 양팔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딛고 운전면허를 따낸 사람이다.

몇 년 전까지 양팔장애인은 운전면허취득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양팔장애인의 운전면허취득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재현씨는 외국의 양팔 장애인이 두 발로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양팔장애인이 두 발로 운전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방송국에 보낸다.

끊임없이 여론을 조성한 박재현씨의 노력으로 마침내 2000년부터는 양팔장애인도 개정된 법률에 의해 면허취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박재현씨는 법이 잘못 되었으면 고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권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장애인 스스로 요구하고 쟁취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그에게서 꿈을 현실로 만든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본다.

잘못된 법이라면 고쳐야한다고 생각한 사람들 때문에 역사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 같은 그들이 바로 이 땅에 처음 떨어진 작은 씨앗이 아니었을까? 척박한 땅에 처음 떨어진 작은 민들레 씨앗 하나가 마침내 온 들판을 뒤덮는 날이 온다.

저 작은 풀꽃들의 뿌리가 흙을 꽉 움켜쥐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거센 폭우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작은 씨앗 한 알속에 세상을 뒤흔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힘이 숨어 있다.

호박의 넝쿨손이 베란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씨앗 한 알의 힘을 가르쳐준다.

김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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