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바다여 옷에 묻으면 잘 안지는

너는 푸른 잉크 물이다.

수면(水面)으로 내려 닿는 돌층계도

떠나는 고동 소리도

지우려면 다 지울 수 있지만

만(灣)의 끝머리 흰 등대도

등대위의 구름 자락도

흩어진 섬들의 밝은 무덤도

지우려면 다 지울 수 있지만

바다여 너는 푸른 잉크 물이다.

찍어서 내가 쓰는

가슴의 잉크 물이다.

신동집 '바다'부분

시적 발상의 위트가 재미를 주고 있다.

무엇 무엇은 다 지울 수 있지만 바다의 색깔은 지울 수 없다는 트릭 설정이 그것이다.

그 무엇의 트릭 속에 시각과 청각 이미지인'돌층계''섬들의 밝은 무덤''뱃고동소리'들을 자연스레 삽입시켜 밝고 화창한 바다의 한때를 원숙한 달필로 그리고 있다.

술좌석 거나하면 이 자작시 낭독하던 원로시인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진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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