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새 내린 200㎜의 강우에 대구의 중심, 신천이 힘없이 무너졌다.
신천변의 콘크리트 호안은 폭격을 맞은 것 처럼 힘없이 내려앉았고 둔치의 화단, 게이트볼 연습장 등 각종 휴게.체육시설도 침수, 황폐화됐다.
둔치의 산책로와 자전거전용길도 모래, 진흙 등으로 뒤덮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가로등, 벤치, 심지어 음용수대마저 뽑혀 나뒹굴고 있다.
신천 유지수 확보를 위해 상동교로 연결된 수로 등 각종 매립 시설물도 콘크리트 호안이 무너지면서 휑하니 드러났고 잠수교도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왜 무너졌나
이번 신천 유실은 지난 1998년 태풍 '애니', 지난해 '루사'에 이어 최근 6년새 3번째. 문제는 유실의 피해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 많지 않은 강우에도 신천이 쉽게 무너지는 것은 하천이 직선화되고 좁아졌기 때문. 홍수 등에 대비한 치수공간이어야 할 신천 둔치가 휴식공간, 도로 등으로 개발되면서 하천폭이 좁아지고 콘크리트로 직선화돼 유속이 급속도로 빨라졌기 때문이란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직선화된 하천은 자연 하천에 비해 유속은 2, 3배, 파괴력은 최대 9배까지 증가하고 홍수시엔 그 파괴력이 배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내릴 경우 갑자기 불어나고 빨라진 물이 흘러가면서 조금이라도 굽은 지점을 만나면 부딪히면서 호안을 파괴시키는 것. 또 신천의 직선화 등으로 금호강의 유속보다 훨씬 빨라져 금호강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범람하게 된다.
맑고푸른대구21추진협의회 류병윤 국장은 "신천 파괴는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하천을 직선화했기 때문에 발생한 당연한 결과"라며 "콘크리트 호안 블록은 흡수력이 없는데다 흙과 자갈위에 콘크리트 블럭을 얹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지반의 흙이 조금만 유실대도 쉽게 무너지게 된다"고 했다.
또 신천우안도로 중 일부 교량식 구간은 콘크리트 직각 절벽을 이룬채 하천과 직접 접하고 있어 홍수시 급물살에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고, 유속을 더욱 빠르게 하는 원인도 되고 있다.
실제 대봉교 부근의 우안도로 일부 구간은 지반이 침식되고 있어 위태로운 실정이다.
▨자연형 하천 전환의 기회
전문가들은 갈수록 태풍과 집중호우가 강해지고 빈번해지는 등 기상이변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한 복원 등 방제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무턱대고 자연천의 형태인 구불구불한 사행천을 만들거나 하천폭을 넓힐 수는 없는 일. 때문에 이번 기회에 물이 자연스레 흐를 수 있는 최적의 물길을 내고 하천과 둔치 사이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완만하게 하는 등 자연형 하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회장은 "예전과 똑같이 복구되면 홍수시 또다시 유실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유실 부분을 응급 조치한 뒤 점진적으로 콘크리트 호안 블럭을 걷어내고 대신 하폭을 늘리고 경사를 완만하게 하는 등 신천 전구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하천 유실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홍수시의 유속과 방향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 최적의 물길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이 빠르게 내려와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런 형태로 하천길을 내면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마찰과 충돌, 하천 범람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경동정보대 토목공학과 박기호 교수는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홍수파를 견딜 수 있는 유속을 계산, 하천 설계에 우선적으로 반영한뒤 친환경적인 재료를 이용, 제방이나 호안을 조성하고 있다"며 "꼭 상류부터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피해가 심한 구간부터 정밀 계산에 따라 설계해 우선 자연형 하천으로 전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하천의 원활한 흐름을 막는 고무보, 분수시설 등 불필요하고 인위적인 시설물도 이번 기회에 없애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둔치 본래 기능 찾아야
현재 휴식 공간 및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신천 둔치를 치수 등 하천 본래 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재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천제방 구조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홍수 대비 등 치수, 방제에 있기 때문. 환경 전문가들은 "홍수 대비 공간인 둔치를 시민 휴식터로 조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넓고 평평하게 만드는 바람에 하천 폭이 줄고 직선화돼 이번 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신천 둔치의 각종 휴식 및 체육 시설 등 시설 공간을 최소화하고 둔치를 홍수시 물이 흐를 수 있는 공간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구시도 신천 둔치를 산책로 등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고 하천 기능을 살린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대구시 시설안전관리 사업소 하천관리과 관계자는 "신천 둔치를 공원 및 체육 시설을 갖춘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아 둔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부터 전환돼야 한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하천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형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천 둔치는 1980년대 시작된 신천종합개발의 일환으로 가창교에서 금호강 합류지점까지의 하천(12.4㎞) 양쪽에 41만8천㎡ 규모로 조성됐다.
서울의 한강 둔치를 모델로 해 만든 신천 둔치는 도심 속 시민휴식 생태공원을 목표로 최근까지 잔디 광장, 꽃길 조성, 대형 화단 등이 조성돼 왔다.
현재 이곳엔 체육 시설 8종 38면, 자전거도로 1만7천m, 파고라 등 휴게 시설 26종 790점, 잔디 19만9천㎡, 각종 꽃과 나무 등 조경수 14만6천여본 등이 가꿔져 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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