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정권 교체기나 선거를 앞둔 시점이면 어김없이 등장한 '변화와 개혁'의 구호가 정치권 전체를 생존경쟁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민주당은 지역구도 타파를 내건 신당의 출현으로 여당의 자리를 잃게 될 처지고 한나라당은 구 질서에 핵심역할을 한 나이 많은 의원들을 물러가라고 하는 목소리로 내부 갈등이 끓고 있다.
낡은 정치로는 더 이상 시대의 대세에 따라갈 수 없다며 저마다 변화와 개혁의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정치권의 경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거짓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정치권이 즐겨 쓰는 '역사와 국민 앞에 솔직하라'는 말이 상대는 물론 스스로를 찌를 수도 있는 비수로 등장하고 있다.<
대형 사건이나 현안이 떠오를 때마다 의혹과 음모설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 정치권이 벌이는 작금의 경쟁에서 진실의 정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적 선택과 판단에 거짓 여부의 탐색이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유권자에게는 누가 얼마나 솔직한 모습으로 국민앞에 다가서는지를 살펴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
광주.전남지역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잔류파 의원들은 "신당의 배후가 노 대통령임이 드러났다"며 신당논의가 진행된 동안 대통령이 줄곧 연막을 치고 거짓말로 일관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또 "우리 정치에서 가장 심한 병폐의 1번으로 지역구도를 꼽은 대통령이 호남인들을 대상으로 우리당을 영남당이라면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선동했다"고도 공격했다.
스스로 지역구도의 피해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지역구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표적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60대 용퇴론이나 5.6공 인사 정계퇴진 주장에도 음모의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적잖다.
지도부와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며 저의를 의심하는 의원도 있고 최병렬 대표의 야심을 거론하는 말도 흘러 다닌다.
특히 용퇴론의 주 대상으로 거론되는 영남권 의원들은 지역유권자의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도권 의원들의 총선용 발언으로 격하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처럼 첨예하게 맞선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와 관련, 대통령의 책임과 결단을 촉구하는 정치권도 아직은 자신들의 말을 숨기고 있다.
파병반대를 밝히는 의원은 있지만 파병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않는다.
섣부른 소신 피력으로 표적이 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외교적 압박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솔직하게 고민하지 않는 대신 일단 대통령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어느 의원은 사석에서 "대통령이 솔직하게 나서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외교무대에서 우리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대부분 국민들이 모르지 않는 판에 굳이 우리 형편을 쉬쉬하며 감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대통령 주변 의혹을 밝히는 게임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여권은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을 겨냥, 무차별 폭로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한쪽은 진실을 밝히자고 하고 다른 편은 국감의 무대에 거짓을 퍼트리지 말라고 한다.
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 검찰 소환을 요구받은 의원에게 출두하지 말라고 한 원내총무의 지침을 놓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우리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여당과 대통령을 비난할 때 국민들이 납득하겠는가" 라며 정정당당한 자세를 요구했다.
그러나 홍사덕 총무의 "정치에서는 말이 중요하다.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마치 당이나 두 의원이 정정당당하게 임하지 아니하는 인상을 주는 언어의 묘미를 깊이 생각하라"는 반박도 새겨볼 만하다.
저마다 개혁과 진실을 내걸고 상대를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정치권의 진실경쟁의 단기 목적지는 내년 총선이다.
그런 점에서 유권자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느니 대표를 잘못 뽑았다는 식의 유권자와 대의원의 선택을 가벼이 평가하는 빌미를 또다시 주지 않기 위해선 누가, 얼마나, 국민과 역사앞에 솔직한지를 판단해야 할 의무가 유권자에게 있다.
서영관〈정치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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