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9).은빈(7) 자매는 엄마가 남동생 은준이를 낳는 모습을 병원 분만실에서 지켜보았다.
엄마의 양손을 꼭 잡고서. 이제 은준이가 세상에 태어난지도 2개월이 다 돼간다.
"혹시나 출산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지나 않았을까?" "왜 아이들에게 분만하는 모습을 보여줬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이들 가족이 사는 모습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누나들의 사랑으로 크는 막내
포항시 오천읍 해병1사단 옆 한 아파트. 20평 정도 되는 아담한 공간에 유옥덕(38)·김무련(36)씨 부부와 세 남매가 둥지를 틀고 있다.
"잇차, 이제 엄마한테 가야지" 동생을 안고 있다가 엄마에게 넘기는 은진이의 폼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하는 동생의 뒷목을 받쳐 안는 모습이 아주 능숙했다.
"새벽에 은준이가 울어대면 은진이가 달려와 안아줘요. 저번에 물김치를 담글 때는 은진이가 2시간이나 은준이를 안아줘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김무련씨는 자신도 은진이만 할 때 조카들을 등에 업고 키웠다며 엄마를 닮아 아기를 잘 보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막내 은준이는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큰 누나 은진이는 틈날 때마다 은준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준다.
둘째 누나 은빈이는 매주 한번씩 책을 읽어준다.
은빈이는 큰 언니처럼 은준이를 자유롭게 안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동생을 하나 더 낳아달라고 조른다.
◇온가족이 함께 한 출산
김무련씨는 지난 7월 30일 대구가톨릭의료원에서 은준이를 낳았다.
이날 은진, 은빈 자매는 아빠와 함께 오전 6시 30분 병원에 도착, 진통 간격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다가 오전 8시 30분쯤 엄마의 쭈글쭈글한 '번데기'(은진이의 표현)에서 동생의 머리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의 '짬지'에서 피가 많이 나오고 은준이가 나오는게 신기했어요".
어린 아이에게는 충격적인 분만 장면에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선입견은 일시에 사라졌다.
은진, 은빈 자매는 동생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박수를 치며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고 한다
아빠도 겁나는 분만실에 이들 자매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은진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를 낳으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다면서요. 그래서 아이들도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어요".
기성 세대와 달리 요즘엔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도 성교육을 할 정도로 아이들은 일찍부터 성(性)이란 개념을 접하게 된다.
'동생이 나왔어요' '인체의 신비'와 같은 성교육 관련 어린이책도 많이 나오고 있다.
유씨는 은진이가 아홉 살 나이로서 친구들과 내린 결론이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또 여자에게 가장 힘든 순간인 출산이 여자만의 고통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출산은 고통이 아니라 새 생명이 태어나는 가족의 축제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이들도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아빠가 탯줄을 자르는데 돈을 받는 병원도 있었다.
시설이 최첨단으로 잘 돼있는 병원을 권유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병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초유를 먹이고 난 뒤 아직 씻기지 않은 핏덩이 동생을 안아본 은진(오천초교 2년)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름방학 체험학습 과제물을 냈다.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았어요'라는 제목과 함께 분만실에서 찍은 사진과 은진이의 느낌이 적혀있었다.
'나는 세상에 처음 나온 나의 동생을 안아보았다.
살결이 무척 부드러웠고 눈을 감은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은준이를 낳으실 때 너무 아파하셨는데 엄마는 어떻게 행복해 하실 수 있는 걸까? 엄마는 은준이와 우리들을 낳으실 때 무척 아프지만 예쁜 우리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아파도 참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은진이는 이 과제물로 학교에서 장려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제 은진이에게서 출산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유씨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분만을 함께 하면서 가족애를 더 느끼게 되고 '천사'가 나오는 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성교육이 절로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취재 후기
유옥덕씨는 한마디로 '신세대 군인'이었다.
직업군인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상한 아빠'로 가정적인 유씨는 두 딸의 성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아빠. 두 딸이 엄마의 분만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의 노력덕분이었다.
그래도 직업군인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30분 이상 울어대는 은준이를 달래는 비결은 노래. "하낫둘셋∼ 발을 맞추어∼ 은준이 아빠 걸어갑니다∼ 하낫둘셋" 군가로 자장가를 불러주면 은준이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속으로 빠져든다.
사실 유씨 부부는 셋째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애를 둘 가질까, 셋 가질까 문제를 두고 싸우느라 신혼 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다고. 어쩌다 생긴 아기 때문에 유씨 가족은 행복에 싸여있다.
평소에도 엄마 일을 잘 거드는 두 딸은 동생이 생기고는 더욱 열심히 엄마를 도우며 누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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