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나랏말 대접 제대로

9일은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창제한 날, 한글날이다.

연초 대통령직인수위는 국어경쟁력 제고와 국민의 올바른 국어생활을 위해 국어기본법 제정을 검토, 문화관광부로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의욕에 찬 청사진과는 달리 국어기본법 제정에는 진척이 없는 상태이고,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인해 한글날 국경일 제정도 물 건너간 상태인것 같다.

우리말글의 생일을 앞둔 지금 한글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가열(加熱)을 표현하는 우리말에는 태운다 굽는다 삶는다 볶는다 덥히다 끓인다 데친다 곤다 달군다 달인다 지진다 찐다 데운다 등 가열방법이나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지구상에 수많은 말과 글이 있지만 이같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한글뿐이다.

우리는 이 장점을 살려 한글을 올바로 대접하고 있는가.

모 TV 시청자 프로에는, 방영된 드라마 등에서 오류를 찾는 '옥에 티'를 지적하면서 '옥의 티'라고 잘못된 제목을 달았다.

국립 국어연구원은 국어대사전을 편찬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약칭을 선관위로 등재하면서 괄호 속 한문은 '選管委'를 '選菅委'로 게재, 맡을관(管)을 왕골관(菅)으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했다.

또 '마뜩하지 않다'를 줄이면 '마뜩지 않다' '마뜩잖다'로 규정한 한글맞춤법 39, 40항을 무시(?)하고 '마뜩찮다'로 잘못 등재해 놓았다.

최고의 지성인이 모였다는 서울대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제'된다고 비분강개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면서 '배제(排除)'를 '배재'로 잘못 썼다고 한다.

인터넷 세대들이 메일을 주고받을 때 'ㅊㅋ'(축하) '방가'(반가워)로 예사롭지 않게 편리함만 추구하는 것도 한글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일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인천의 공단지역에서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고3수험생 김빛나래양. 25년간 우리말 발음을 정리하여 '한국어 표준발음사전'을 편찬한 이현복 교수. 늘기쁜길, 정다운길, 풀내음길 등 아름다운 우리말로 길 이름을 짓는 부산시와 묵묵히 '우리말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한글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난 6일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 세종로에 한글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선보이면서 문화관광부 관계자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어 그 고마움을 알기 힘든 한글의 위대성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교정부.성병휘기자 sbh126@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