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버스가..." 순식간에 '쾅'

21일 오전 7시쯤 대구시 서구 비산동 반고개에서 만난 미봉산악회원 30명은 전세버스를 타고 청량산으로 출발했다. 5년간 매월 21일에 빠짐없이 열렸던 정기산행.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시락과 음료수, 과일, 떡을 준비했고, 회원들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산사를 찾는다는 설렘으로 마치 소풍 떠나는 어린이들 마냥 들떠있었다. 3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청량산,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운전기사 신씨는 수년째 월례여행을 동행해 왔던 터.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나 청량사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 오르려는 욕심은 애당초 없었다. 자유시간을 즐기며 점심도 먹고 산자락 이곳저곳을 다니며 붉은 가을 단풍을 즐겼다. 2시간 정도 산에 머물다 3시20분쯤 하산했다. 차에서 기다리던 운전사 신씨는 "단풍구경을 해서 그런지 예뻐졌다" 며 버스에 오르는 회원들을 반겼다.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20분 일찍 단풍의 추억을 뒤로한 채 대구로 향했다.

그러나 버스는 출발 직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유난히 빠른 속도로 커브길을 내려오던 버스는 휘청거리다가 갑자기 계곡쪽을 향해 날다시피 내달았다. 운전사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위험을 직감한 사람들은 "버스가 왜 이래?"하며 술렁였고, 일부 승객은 앞좌석을 꽉 붙들었다. 그와 동시에 '쾅'하는 굉음과 함께 버스는 원래 달리던 길에서 40여m 떨어진 계곡 맞은편으로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버스는 계곡 건너편에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에 정면으로 부딪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신음소리가 계곡 가득히 울렸고, 피와 범벅이 된 몸조각들이 사고 현장 주변에 널부러졌다. 버스 앞 출입문 쪽에 탔던 승객들은 온몸이 찢기고 떨어져 나간채 숨을 거뒀고, 뒷쪽 승객들은 충격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나머지 승객들은 "사람살려"를 외치며 신음했다.

영주소방서는 사고발생 약 20분만인 오후 3시50분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봉화군 명호면 파견근무자를 먼저 현장에 급파, 승객 구조에 나섰다. 그 뒤 영주.안동소방서 소속 119구조대와 의용소방대원들을 대거 투입, 본격적인 구조활동을 시작했으며, 오후 4시10분쯤 엠뷸런스 8대를 동원해 사망자와 중상자들의 병원 이송을 완료했다. 현장에서 인명구조 작업을 직접 지휘한 조송래(46) 영주소방서장은 "일부 승객의 손에 쥐어진 한웅큼의 들국화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며 사고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봉화.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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