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내몽골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면서, 몽골의 광활한 초원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름다운 몽골의 민요를 불러주던 스친 바터, 말타기를 가르쳐주었던 수줍은 많은 하다아, 만난 자리에서 이선행 선생님과 의형제를 맺었던 의리의 사나이 공하이 타오, 내몽골의 사라져 가는 초원을 살리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는 바그너, 나그네에게 술자리를 마련에 주고 수줍음과 호기심에 문밖에서 미소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던 마을의 아낙네들.... 그들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순박한 마음씨, 밝은 웃음은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내몽골을 떠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문명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기를....
십여 년 전에 유학생활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메말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순박하고 깊은 정감을 가진 민족이었던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영악해질 것을 가르친다
싸워서 이겨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일등이 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사람을 이렇게 자꾸만 모질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 속에 경쟁심만 부추긴다면, 우리는 얼마나 추하고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이웃과 세상에 고통을 줄 것인가! '초보운전'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차를 사정없이 추월하고 위협운전까지 하는 모습에서 황폐화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본다.
몇 년 전에 문경이 고향인 마음씨가 어진 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 학생을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물었더니,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들이 자꾸 저를 무시해서, 이제 못된 사람이 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 제자는 워낙 바탕이 착해서 다행히 자신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나는 강의실에 들어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어떤 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일까요? 지금 모든 나라는 더욱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가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박한 사람들이 무시당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삼국지를 무척 좋아하고, 지금도 자주 읽는다.
삼국지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은 유비이다.
술에 만취해서 하나뿐인 서주성을 여포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청하는 장비를 바라보는 유비의 따뜻한 시선은 거듭 나를 감동케 한다.
유비는 말한다.
"장비 아우야, 우리 삼형제는 각자 단점이 있는 사람이란다.
자책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너를 용서하거라".
지금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조조의 능력을 높이 사고 유비의 어리석음을 조소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조조의 능력이 아니라 유비의 어진 마음씨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상은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많이 모질어졌다.
하지만, 돌 틈 사이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봄의 새싹처럼 우리들의 주위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몇 달 전에 내 차가 도로 중간에서 서버린 적이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는데도 한 청년이 자신의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서 내 차를 길가까지 밀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나는 아직 한번도 멈추어선 차에 그런 친절을 베푼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차를 보면 도와줘야지'하고 다짐하였다.
며칠 전 지훈이란 학생의 생일날이었다.
십 여명의 친구들이 게릴라식으로 모여서 깜짝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고 한다.
지훈이는 그 날 감동해서 울었다.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서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 되리라고 믿는다.
아름다운 가을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나는 유비를 그리워한다.
홍승표〈계명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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