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뱃사공'이라는 가요를 18번으로 불러오던 사람의 넋두리입니다.
자기는 이 노래의 한 소절을 〈꿈인가 놀아보니 소식이 오네〉로 불러왔었는데 어느 날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서 화면에 뜨는 가사를 보니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로 나오더랍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이제까지 속고 살아왔다는 기분이 들어 신명이 싹 가시더랍니다.
〈군인간 오라버니〉와 〈꿈인가 놀아보니〉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가사를 꼼꼼히 읽지 않은 소치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나 사물들은 자기를 호명해 주는 목소리의 크기만큼 대답합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관심과 애정의 정도로 자기를 부르는 사람을 돌아봅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꼼꼼히 살펴 읽지 않으면 시가 제 스스로 가슴을 열고 독자를 맞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독자가 시를 건성으로 읽으며 스쳐 지나가면 시도 그 독자 곁을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시를 꼼꼼히 읽는 방법의 하나로 시를 옮겨 써 보는 활동은 권장할 만합니다.
소설가 신경숙씨는 습작 시절에 유명한 단편소설 수십 편을 대학노트에 옮겨 쓰며 문장의 논리와 호흡을 익혔다고 합니다.
조정래씨 또한 그의 장편소설 '한강'제10권의 후기에서 〈책은 백 번 읽는 것보다는 한 번 베끼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시를 옮겨 쓰며 읽으면 시어 하나 하나의 의미와 배치에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행과 연의 구조와 여백의 의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을 외줄기/남도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 시인의 이 '나그네'도 한번 옮겨 써 보면 왜 〈길손〉이나 〈여행자〉가 아니고 〈나그네〉인지를, 〈120킬로미터〉가 아니고 왜 〈삼백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그네〉 〈강나루〉 〈밀밭길〉 등 세 음절의 말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리듬을 눈치채기 쉽습니다.
특히 영상매체에 익숙해져 글을 건성으로 읽는 경향이 강한 요즘 아이들에게 시를 옮겨 써보도록 하는 일은 시를 꼼꼼히 읽도록 하는 장치로서 매우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눈/눈/눈/받아먹자 입으로//아/아/아/코로 자꾸 떨어진다//호/호/호/이게 코지 입이냐"윤석중님의 이 동시도 옮겨 써 보도록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행과 연 구분의 의도를 쉽게 알아채고, 또 이 시에서 연상되는 장면을 더욱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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