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이야기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 시간은 박제가 된다.
카메라 필름에는 순간을 정지시켜 영원으로 삼고픈 인간의 욕망이 각인된다.
언어 역시 '문자'가 등장하면서 '영원성'을 얻었다.
문자가 사용되면서 말은 '공기의 진동'으로서의 시간적.공간적 한계성을 넘어섰다.
문자는 과연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을까.
최근 발간된 '문자 이야기'(앤드류 로빈슨 지음.박재욱 옮김)는 경이롭고 흥미로운 문자 세계로의 추리 여행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앤드류 로빈슨은 음성.상징.문자의 상호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상형문자, 설형문자, 선상문자, 알파벳, 한자 등 고대부터 현대까지 명멸했던 문자들의 수수께끼를 풀어 놓는다.
유럽과 미국에서 보통 수준의 문자 해독력을 가진 사람은 52개의 알파벳과 숫자.구두점 등을 이해하고 쓸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보통 수준의 문자 해독력을 가진 사람은 약 2천개의 기호를 알고 쓸 수 있으며,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5천개 이상의 기호를 안다.
저자는 일본에서 1950년대 중반 극에 달했던 10대 자살 현상이 2차 세계대전 후 수천자에 달하는 일본 문자를 가르친 대중 교육의 확산과 무관치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복잡한 문자 체계는 일본이 경제대국이 되는 것을 가로막지 않았다.
일본인은 한자를 버리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50여개의 기호만으로 대부분의 문자를 표현할 수 있는 알파벳과 복잡한 일본 문자 가운데 어느것이 효율적일까.
저자는 문자의 생성 및 소멸 이유에 대해서도 돋보기를 댄다.
제국의 탄생에서 문자가 필요하다는 상식을 뒤집는 예외로서 잉카 문명을 꼽는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인들은 '키푸'라는 밧줄과 끈의 매듭으로 잉카제국 내에서 일어나는 물품의 이동을 기록하고 판독했다.
문자가 생멸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기호의 단순성이나 효율성이 생존의 유일한 기준도 아니다.
상형문자 역시 원시적인 글자라는 것이 통념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같은 인식은 분명 잘못됐다.
도로 표지판과 전자제품, 의류 라벨, 컴퓨터 화면, 자판 등등에 쓰이는 기호들이야말로 상형문자와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서구(영어) 문화의 지배력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모든 나라에서 자신들의 문자를 '로마자화'하자는 요구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문자를 미시적이고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정치.경제.종교.문화 등 다방면의 각도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문자 체계에 대한 귀중한 참고서가 될 만하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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