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죽은 사람은 8천600여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앞지르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한국은 자살률 4위를 기록했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재촉하는 병든 사회임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수치이다.
특히 근래 들어 급속도로 늘고 있는 30, 40대 가장들과 청소년의 자살은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인 가정의 안온함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어서 그 심각성이 더욱 우려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까.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의 자살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거대한 초부족 사회일수록 심하게 좌절당한 지위 추구자들이 많다.
그러한 좌절감의 한 표출형태가 자살이다
그가 쓴 인간 동물원(김석희 옮김)은 권력, 지위, 섹스, 전쟁 등 인간사회의 문제들을 동물행동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모리스는 1928년 영국 남부의 윌트셔에서 태어나 버밍엄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부터 8년 동안 런던 동물원의 포유류 관장을 지냈으며, 같은 기간에 BBC 방송의 동물원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 및 제작을 맡았다.
특히 1967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털없는 원숭이는 2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판매됐다.
인간동물원을 통해 저자는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 보이는 스트레스나 이상 행동들이 동물원이라는 부자연스러운 공간에 갇힌 동물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좌절에서 오는 분노는 보통 타인이나 외부의 대상물에게 표현되는데 그러한 통로가 막혔을 경우 자기 자신이 유일한 배출구로 남는다는 것이다.
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배출구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살률과 살인율의 상관관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에 의하면 자살률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급격히 떨어졌으며, 보통 자살률과 살인율은 반비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저자는 공격성이 어느 쪽으로 폭발하는지는 특정한 공동체가 살인을 얼마나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물들은 나름대로 적정한 개체수 상한선이 있어 그 이상 늘어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개체수를 조절한다.
동물원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무자비한 공격이 나타나는 것도 상한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동물들은 우리에 갇혀 있기 전에는 스트레스와 무차별적인 폭력이나 변칙적인 행동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우리의 철망 때문에 적을 공격할 수 없으면 제 살을 물어뜯는 등 심각한 자해행위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반사회적 행동양식은 오늘날의 도시 안에서 더욱 격렬해졌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 아직 그러한 메커니즘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관찰되는 낙태와 살인의 만연, 비정상적인 성교와 피임, 사형제도 등 역시 그러한 개체수 조절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밖에 집단간의 갈등도, 이상 성욕, 교육제도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동물학자의 눈으로 살폈다.
문명을 전면 부인하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인류의 생물학적 유산을 보다 크게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이 책은 현대인을 향한 긴급한 경고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간사회에 대한 놀라운 통찰까지 보여준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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