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크리스마스에 부쳐)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성탄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온 거리에 울려퍼지고 쇼핑나온 젊은이들과 가족들끼리 식사를 즐기는 인파들이 온 거리에 가득하다.

경제의 어려움과 정치적 소란,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뒤로 한 채 2003년 한해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는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지나간 한해 내내 치러야 했던 불행과 고통과 슬픔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 한해 가난 때문에 목숨을 버려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지 가난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아파트에서 투신하고, 자식들을 강에 떠밀고, 함께 목을 맨 사례들이 부지기수이다.

어디 그뿐인가. 단돈 몇만원을 내지 못하여 그 더운 여름과 겨울에 단전.단수되는 가구수가 수만가구에 이르고, 수백만명의 청년실업자와 조기퇴직자들이 생겨났고, 신용불량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거기에다 수도권의 일부에 불어닥친 투기열풍은 모든 선량한 시민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였다.

사람들이 단지 배가 고파 자살까지 결심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속의 절망 때문에 이들을 죽음까지 몰고 간 것이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사회,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 - 지난 2003년 한해의 풍향계이자 풍속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은 서민들의 내집마련의 꿈을 빼앗아가고 그와 동시에 부동산투기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한 이후 2003년에 들어 평당 분양가가 5년 사이에 3배 증가함으로써 과거 월 250만원의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월 100만원씩 저축을 해서 서울에서 국민주택규모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27년 이상 걸려야 한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하기야 월 250만원을 받고 월 100만원씩을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투기대책도 내놓았고, 사회안전망강화대책도 내놓았다.

조금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미 투기로 얻은 이득은 유지되고 있고 빈곤층의 고통은 그대로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도 2000년 10월 제도 시행 초기에는 148만명이었던 수급자가 2003년 3월에는 134만명으로 줄었다.

자살사건이 늘어난 이후 정부의 사실조사에 의해 겨우 5만명의 수급자가 늘었을 뿐이다.

아름다운가게가 12월 수익배분을 하면서 조사해 보니 극도의 빈곤층이 수급 대상이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예산이 없고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썩어나는 것이 돈이다.

최근의 정치자금을 보면 정말 우리 국민들은 살맛이 안난다.

내년 예산안의 계수조정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정치인들의 마음은 서민들의 타는 가슴속을 헤아리기는커녕 콩밭에 가 있다.

대선자금의 조달과정에서 드러난 막대한 불법성에 대해 어느 당도 진정으로 사죄하는 말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데 열을 올렸다.

뭐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그러더니 야3당은 투명한 정치자금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오히려 개악한 법안들에 손쉽게 합의를 이루어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시민단체의 성명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썩었다.

사회 곳곳이 썩어도 너무 썩었다.

특히 지역주의정치와 재벌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썩어 그 냄새가 하늘을 찌른다.

이른바 '차떼기' 수법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불법 정치자금 조달, 여야 정당에 대한 썬앤문 그룹의 로비, 대통령의 대선자금 350억~400억원 발언, 삼성.LG.SK 등 국내 최대 재벌들과 여야 정당들의 검은 유착, 김운용 의원 집에서 150만 달러 발견 등 매일 드러나고 있는 정치인들의 비리사건을 듣고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최근 일련의 부패정치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은 절망과 분노, 그리고 증오로 뒤범벅이 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셴켸비치가 쓴 소설의 제목대로 우리는 절규하지 않을 수 없다.

"쿠오 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변호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