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동성로의 내력

동성로는 대구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구의 중심가이자 젊음의 거리이다.

중앙파출소에서 대구역 근처까지 이르는 남북도로로 항시 많은 인파가 북적이며, 청춘남녀와 아름다운 쇼윈도를 가진 옷가게들이 어울려 한껏 도심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대구에는 동성로 이외에도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가 있다.

이들 거리 이름에는 하나같이 성(城)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성(城)과 관련이 있음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대구읍성의 성벽을 허물고 나서 성의 동서남북을 따라 이름이 붙여진 거리로서 서문시장, 남문시장의 이름처럼 역사 속에 사라진 대구읍성이 남겨준 지명인 것이다.

대구읍성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1736년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여 만들었으며, 1906년 친일파 박중양이 일본거류민의 건의를 받아들여 철거하기까지 170여년간 존속하고 있었다.

대구읍성에는 남문인 영남제일관(지금은 망우공원에 복원되어 있다)을 비롯하여 진동문, 달서문, 공북문과 망루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구읍성이 헐리고 성벽이 있었던 자리에 새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동성로, 서성로, 북성로, 남성로이며, 특히 남성로는 그 자리에 약령시가 옮겨 열리게 됨으로써 약전골목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약령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약령시 테마거리 조성을 위한 공사에 앞서 대구읍성의 기초를 확인하기 위해 약전골목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성벽의 기초가 뚜렷이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성벽을 쌓았던 성돌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어 역사 속에 묻힌 대구읍성의 실체를 직접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구읍성은 100년도 넘지 않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사라진 대구읍성을 되살릴 순 없겠지만 그나마 대구읍성이 우리에게 남겨준 지명만이라도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구사람들이 동성로를 자랑하고 싶은 만큼 동성로의 내력(來歷)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가슴속에서나마 대구읍성을 쌓아두어야 하겠다.

박승규(영남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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