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도청 인턴공무원

하루 8시간 근무. 봉급 60만원. 오후 6시 퇴근. 4개월짜리 공무원….

공익근무요원 이야기가 아니다.

경북도청에서 일하는 33명의 인턴공무원들이다.

지난 12일부터 4월말까지 공무원생활을 경험한다.

'졸업=실업'인 시대. 정식 채용만이 취직일까. 특히 채용 기회조차 얻기 힘든 여성들로선 인턴직도 얻기가 쉽지 않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넘어 '이구백'(이십대 9할이 백수)인 실업시대에 이들은 혜택(?)받은 사람이다.

비록 4개월 간의 임시직이지만 취업을 경험해본다는 것 자체가 취업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겐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미 보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직장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4개월간의 짧은 인턴공무원이지만 곧 보란 듯이 당당하게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즐겁게 일을 배우게 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백수탈출'의 대반란을 꿈꾼다

2002년 영남대 응용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손승윤씨는 전공분야와 관련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영어와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 인턴공무원은 평소 잘 모르던 행정업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렇지만 손씨는 자신이 졸업한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취업난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 지방대학 졸업자는 서류전형 통과도 어렵다"며 "자연 일반회사 취업보다는 공무원시험으로 많이 몰린다"고 했다.

처음부터 공무원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인턴생활을 시작하면서 공무원이 되기로 했을까. 이들 33명 중에서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것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현재 9급 공무원시험을 통과한 예비공무원들 중 60~70%가 여성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오죽하면 부서마다 남자직원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할 정도가 됐을까.

구선영(대구대 전산학과 2월 졸업예정).하주영(영남대 경영학과 2002년 졸업).김효현(대구대 정보통신공학부 2월 졸업예정).홍지영(영남대 영문과 2002년 졸업)씨도 공무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김효현씨는 "정보공학을 전공해 다른 학과보다 상대적으로 취업에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다"며 "고민 끝에 지난해 6월부터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나중에 공무원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인턴생활도 열심이다.

워드와 엑셀 등 컴퓨터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중인 홍지영씨에 비해 하주영씨는 조금 유리한 입장이다.

하씨는 "공무원시험에서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2001년 미리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따뒀다"고 했다.

구선영씨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 조금 더 일찍 공무원 생활을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인턴생활을 시작했단다.

구씨는 "쉽지는 않겠지만 공무원시험이 여의치 않으면 취업도 고려중"이라며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최환석(대구예술대 사진영상학과 2월졸업 예정)씨는 운이 좋은 경우다.

경북도청 공보실에서 전공과 관련있는 사진편집 업무를 맡아보고 있다.

퇴근 후엔 상업사진을 배우며 스튜디오일을 하고 있다.

전공이 뚜렷하게 차별화돼 취업에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러나야 일자리 순환이 쉽게 될 텐데 요즘같은 불경기에 누가 자리를 옮기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12일부터 경북도에서 인턴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성철(32.대구시 북구 읍내동 한서타운)씨는 지금 꿈에 부풀어 있다.

2002년 12월 대구시교육공무원 시험에 합격, 현재 발령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미 1년이 지났지만 올해 내로 발령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인턴공무원 경험은 그에게는 공무원생활에 대한 직무연수인 셈이다.

박씨는 "막막하게 바로 공무원 발령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4개월의 짧은 경험이지만 공무원세계를 미리 경험하게 돼 행운"이라며 "발령을 받았을 때 직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씨는 '힘든 시절'을 겪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계명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취업난이 심해 달리 길을 찾기도 어려울 때였다.

박씨는 "그래도 그때는 중소기업 등에 자리가 있어 취업에 숨구멍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몇 년간의 준비 끝에 바라던 공무원 꿈을 이뤘지만 박씨는 이제부터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은 늘 꿈꾸는 사람에게 있듯 박씨는 틈틈이 다른 직급의 공무원시험에도 응시할 생각이다.

막상 이들은 공무원을 어떻게 생각할까. 밖에서 보는 공무원과 안에서 직접 경험한 공무원 생활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인턴공무원은 "직접 현장에서 일해보니 관료적이고 딱딱하다는 공무원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나 자신도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자랑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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