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다가 지갑을 호텔에 두고 와 낭패를 본 후 친구인 랄프 슈나이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식사하는 사람들(diners)'에서 유래한 '다이너스 카드'를 1950년에 만들었는데 이것이 신용카드의 효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천만장 이상의 신용카드가 발급되어 경제활동인구 1인당 약 4장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고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사용률은 휴대전화, 인터넷 사용률과 함께 세계 순위에서 아주 앞선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용카드 사용으로 선진 신용사회로 발돋움하기는커녕 신용불량자가 360만 명을 넘는 신용위기 국면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와 관련된 갖가지 범죄와 자살 등 사회적 문제까지 겪고 있다.
지난해에 불거진 모 카드회사 문제는 해를 넘겨가면서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 로 남아있다.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긴 정부의 조급함, 돌려받을 수 있을지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한 금융회사의 무모함,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보자는 개인의 무분별이 경제생활의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신용사회의 척도이기도 한 신용카드를 애물단지로 전락시키고 마침내는 금융 불안과 사회적 문제를 야 기시킨 원흉이 되었음이 너무 안타깝다.
신용을 기반으로 발급되고 사용되어야 할 신용카드가 고객에 대한 신용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소득 한 푼 없는 학생이나 무직자에게까지 발급을 권장하고, 시장 선점을 위해 행상처럼 가두판매까지 감행한 일부 카드사의 영업 방식은 선진 신용사회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신용카드라는 새로운 선진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신용카드의 편리성과 경제적 효과에만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전 국민의 7, 8%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너무나도 큰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경제와 국민 개인의 경제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신뢰(trust)와 신용(credit)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못한 때문이고 또한 선진국의 금융제도와 기술을 도입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합리적인 소비문화와 근검절약 정신을 접목시키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들이 잘 사는 선진국일수록 신뢰와 신용을 매우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고 분수에 맞는 건전한 소비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사회적 신뢰 기반과 신용사회 기틀이 정착되지 않고서야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들 참다운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소비와 부동산 경기를 경제 성장의 주된 엔진으로 활용하는 듯한 애매한 정책으로 과소비가 저축을 웃돌고 저축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퇴색되고 있다.
또 개인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분명히 넘고 있고, 실용성보다는 브랜드를 따지고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충동구매 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있다.
유태인들의 율법서인 탈무드에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면 돈버는 법과 쓰는 법을 함께 가르쳐주고,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으면 돈과 재산을 많이 물려주라"는 다소 역설적인 경구가 실려 있다.
미래의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에게 신뢰와 신용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소중한 자산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돈버는 방법과 함께 번 돈을 어떻게 잘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가르칠 필요성이 그 어 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가 염원하는 선진 신용사회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부문에 투명성과 합리성의 원칙이 점차 스며들고 우리 주위 곳곳에 신뢰와 신용이 뿌리를 내릴 때, 그리고 또 우리 모두가 각자의 분수에 맞는 건전한 소비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참다운 선진 신용사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임상녕(대구은행 기획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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