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7대 총선포인트-(2)한나라당 불패신화 깨지나

지난 90년대 말 지역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불패 신화'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특히 '반DJ 정서'가 판을 친 지난 16대 총선에서 대구.경북은 27개 선거구 전체를 한나라당이 휩쓸었고 선거 직전 한달 보름여만에 공천된 한나라당 김만제(金滿提), 현승일(玄勝一) 의원은 당시 박철언(朴哲彦), 이정무(李廷武) 전 장관을 '더블스코어' 차로 낙선시키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4.15 총선을 앞두고 이같은 한나라당 불패신화에 미묘한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정치혐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가 '차떼기'로 비화되자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인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정치판이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측이 지역 공략을 위해 이강철(李康哲) 전 외부인사영입단장 등 측근과 장관급 인사들을 차출, 올인(All-in)하면서 한나라당 싹쓸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지역에서도 더 이상 지역 정치를 한나라당에만 맡길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지역민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그 실망감은 도를 더하고 있다.

게다가 지역 정치권이 야당 의원만으로 채워져 중앙정부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지역발전에 괜히 손해만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같은 지역 분위기는 읽고 있는 것 같다.

한 중량급 의원은 사석에서 "이제 대구. 경북도 한나라당 일색이 돼서는 안된다.

여당 의원도 한 두사람 당선돼야 우리도 한시름 놓게 된다"는 말을 했다.

한나라당 의원 스스로 소위 '한나라당 일색'의 지역 정치판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 수성을 시의원 재선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면 작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는 아직 위기의식이 덜한 것 같다.

최근 중앙당 공천에 대한 잡음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대구의 한 출마예정자는 "대구. 경북이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중앙당은 여전히 대구. 경북에는 누구를 공천하더라도 당선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즉 낙하산 공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대구의 한 선거구 공천신청자들은 '낙하산 공천인사 배제'에 대한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지역출신 의원들이 연연해 하는 '제몫찾기'는 더욱 문제다.

소위 현역의원들이 "제 선거구 밖에 모른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내부 우려가 증폭되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지하철 참사때 대구.경북 의원들은 중구가 지역구인 백승홍(白承弘) 의원을 제외하고는 '먼 산 불보듯'하다가 여론의 지탄이 쏟아지자 지역의원들이 관계당국의 수습책을 촉구하는 등 마지못해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최근 백 의원의 탈당과 관련, 백 의원은 중구를 살리면서 지역 의석수를 늘리는 방안을 제기했으나 인접지역구 의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당 관계자는 "백 의원 탈당을 방치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중.남구뿐 아니라 대구 전지역에서 한나라당이 흔들리는 계기가 됐다"고 비난했다.

또 선거가 다가오자 앞다퉈 자신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현역의원들에 대한 비난도 그치지 않는다.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방치해놓았던 지역사업이 선거때만되면 국회의원들의 치적으로 둔갑하고 있는데 대한 비판이다.

각 선거구마다 현역의원들이 자기 업적을 홍보하는 의정보고회를 잇따라 열고 있으나 이같은 비판론 때문에 분위기는 싸늘하다는 게 현지 여론이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대로 한나라당이 급격한 퇴조세를 보일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한 현역 의원은 "바닥 분위기가 완전히 돌아선 게 아니다.

어디를 가나 아직은 '그래도 한나라당 아닙니까'라는 말이 많다.

한나라당이 대처하기 나름이다"는 말을 했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관계자도 "정치신인들이 열린우리당이나 다른당을 외면하고 한나라당에 몰리는 것 만 봐도 아직은 한나라당 분위기 아니냐"면서 "한나라당이 수권에 대한 비전만 보여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공세로 한나라당이 수세국면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이 하기에 따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반 DJ', '반 노(盧)'로 이어지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대구. 경북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대표의 대구 출마선언으로 대구. 경북은 또다시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지만 지역주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이제 당위로 통한다.

정당과 인물을 놓고 시민들이 또다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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