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문흥한국학자료관 김정원씨

"소장품 하나하나에 사연과 추억이 담겨 있고, 정도 많이 들었지요. 평생에 걸쳐 모은 5만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전시하는 사설박물관 설립이 평생의 꿈입니다".

대구시 수성구 파동에서 '문흥한국학자료관'을 운영하는 김정원(77)씨. 백발이 성성한 나이지만 소장품에 대한 그의 애정은 뜨겁기만하다.

고서 등 소장품을 매만지는 그의 손길에서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정성, 자부심이 절로 배어나왔다.

김씨가 '옛 물건 수집가'로 발을 내디딘 것은 50여년 전. 중구 남산동에서 고서점인 '문흥(文興)서림'을 운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고서로 시작한 그의 수집은 고지도, 국어.국사학 자료, 문집, 생활사 자료, 미술.음악 자료, 도자기, 농기구,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해서 모은 소장품이 본인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김씨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여자들의 분냄새보다 더 좋다"고 털어놨다.

층당 50평이 넘는 자료관 2, 3층은 물론 옥상에까지 빽빽하게 쌓인 자료들은 보는이를 압도할 정도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모은 자료들은 해당 연구자들의 연구자료로 소중하게 쓰였다.

"1970~80년대에는 내로라하는 교수님들이 찾아와 이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셨지요. 땀흘려 옛 자료를 수집한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 때문인지 몰라도 연구자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고 김씨는 안타까워했다.

자료관에 소장된 자료 중 김씨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한국학 자료다.

500여년 전에 금속활자본으로 찍은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과 '경국대전'의 낱말풀이 고서를 비롯해 5천여 점에 이른다.

1907년 번역된 로빈손 크루소(羅貧孫漂流記)와 김영랑, 김광섭, 신석정, 양주동, 주요한, 김상용, 이호우 등 문인들의 육필 원고도 눈에 띈다.

또 '지용시선' '춘원시가집' 등의 시집과 심훈 황순원 등의 소설, '개벽' '문장' 등의 문학잡지, 김두봉이 쓴 '조선말본' 등도 소장하고 있다.

대구.경북에 관한 자료들도 눈길을 끈다.

1903년 경무사가 의병을 잡아들이기 위해 영양군수에게 보냈던 훈령,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린 황성신문, 박정희 조병옥 이광수 유길준 등이 서명을 한 증정본들도 있다.

막내딸을 50냥에 판다는 내용의 노비매매 문서, 200년전에 천체를 그린 천문도(天文圖), 간찰(편지), 궁중 진상물목록표 등 생활 관련 자료도 소장하고 있다.

몇년 전 김씨는 소장자료를 연구하던 중 독도가 한국땅이었으며 대마도도 한때 한국땅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역사민속 조선만담(歷史民俗 朝鮮漫談)'을 공개,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김씨는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자료를 통해 우리는 그 정신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며 "사설박물관을 건립해 하나라도 더 많은 자료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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