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毒사과' 스팸메일

황동규 시인의 근작 시 '탁족(濯足)'에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곳이면 그 어디나 살갑다'는 구절이 나온다.

강원도의 어느 깊은 산골짜기의 개울가에 앉아 느긋하게 발을 씻으며 쓴 것으로 보이는 이 시에서 시인은 오늘의 편리한 통신기기가 일상을 얼마나 피곤하게 구속하고 성가시게 하는가를 반어법으로 표현한 셈이다.

초고속 인터넷망에 연결된 가구와 이용자 비율이 단연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는 가히 '인터넷 왕국'이라 할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거느린다.

우리가 그 편익을 만끽하는 사이 역기능들도 급속히 퍼져 사회에 짙은 그림자들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스팸메일은 특히 문제다.

사용자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무차별로 보내는 이 광고성 메일은 쓰레기와 같다고 해서 '정크메일' '벌크메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성가신 불청객은 날이 갈수록 쓰레기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가정의 평화를 해치고 청소년들의 마음을 부추기는 암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심지어 포르노 광고는 지울 수 없는 경우까지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발송되는 e메일 10통 가운데 8, 9통이 스팸메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KT는 지난해 코넷과 메가패스 등 자사의 서버에서 처리된 스팸메일이 23억3천304만여 건으로 전체 e메일의 81.4%나 됐으며, 한해 동안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고 밝혔다.

국내 업체 중 e메일 발송량이 가장 많은 다음커뮤니케이션도 하루에 처리되는 1억6천만여통 가운데 10분의 1만 정상적인 메일로 분류했다.

▲스팸메일의 유형은 다양하며, 피해도 각양각색이다.

필요한 정보 수신 방해는 물론 바이러스 감염 등 시스템 손상, 생산성 저하, 신용도와 명예 훼손, 사용요금 낭비 등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피해들도 심각한 수준이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야 할 정도지만, 포르노들이 어린이들에게까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살로 내모는 등 '백설공주를 유혹하는 마녀의 독사과' 같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둘러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을 뿐, 그것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제약에는 너무 소홀했다.

마녀에게 무한정한 자유를 줌으로써 선량한 사람들, 특히 미성숙한 어린이들을 '유혹의 독사과' 앞에 앉게 한 것에 다름없다.

더구나 요즘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 바로 미디어 홍수 속에서 살게 된다.

이젠 인터넷 발전 속도만 자랑할 게 아니라 부적절한 이용을 규제하는 법적 규제의 바탕이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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