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코마츠 요코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토미 켄이치입니다 (에~ 뭐야? 젊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노계잖아)".
"뭐 노계라구?"
"앗, 잘 부탁드립니다".
켄이치와 요코의 당황스런 첫 만남의 대화이다.
사람의 속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 저 여자 다리 늘씬한데",
"밥맛이 왜 이래, 멍청한 주방장".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야릇한 상상이며, 분노들이 그대로 표출될 것이고, 말(생각)이 떨어지자마자 대혼란이 이어질 것이다.
켄이치가 짝사랑하는 메구미는 그와 사귈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만일 키스라도 한다면 다음날 병원 사람들이 다 알 거잖아요". 그래서 켄이치에게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토라레'는 인간의 마음을 읽는 도깨비 '사토리'에서 유래한 조어. 일본 '모닝 신 매그넘'에 연재된 사토 마코토의 동명만화(국내명 '돌연변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지극히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결말로 인해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 그러나 '속마음이 들킨 천재'라는 발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사토라레'를 현실에 대입하면 잔인하기 짝이 없다.
국가는 사토라레의 뛰어난 아이큐를 국가적 재산으로 키우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로 키워 국가의 이익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사토라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사토라레의 생각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한다.
전 세계 시청자를 위해 가상의 공간에서 사육 당하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철저히 비인간적이다.
개인의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국가가 개인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파괴한다.
켄이치에게 가해지는 이같은 폭력은 국가적인 '이지메'나 다름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통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얼굴'(속 마음)과 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남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일부러 웃기도 하고, 슬퍼도 입을 꼭 다물고 참아낸다.
영화 속에는 첫번째 사토라레(시라키 시게후미)가 나온다.
그는 사토라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살로 위장해 무인도로 숨어버린다.
자신의 치부가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켄이치는 사려깊은 마음씨를 통해 결국 모든 사람들이 감복하게 된다.
극단화를 위한 대립 구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가야하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첫번째 사토라레가 가면을 통한 소통이라면, 켄이치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남들과 공감하는 소통이다.
가면과 경계가 먼저가 아닌 내면의 진심이 우선되는 소통 노력인 것이다.
내 속마음이 남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면 참 따뜻한 세상이 되겠다.
그런데 남의 속은 도저히 알 수 없고, 내 속만 들킨다면. 그리고 내 속이 남들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른다면… . 이런 생각을 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사태를 접한 우리의 공화국이 첨예한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대립' 속에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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