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후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필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충무공이고, 자의적 글 읽기의 결과로 본 주제는 배반과 닫힘, 그리고 무력감과 절망이다.
백성들은 죽음에 내몰려 있지만 중앙 권력은 허튼 소리나 해댄다.
현실은 절망적인데도 내려 보내는 교서엔 엉터리투성이다.
그런 처참함 속에서도 사익(邪益)에 먼 눈들이 번득이며 시신들 속을 헤집고 다닌다.
정직하고 충직한 현장 책임자라면 피할 수 없는 절망감. 그건 권력과 역사의 배반일 터이다.
노 대통령은 왜 이 책을 다시 읽으려 마음 냈던 것일까?
◇배반당하고 짓밟힌 주인들
필자의 멋대로식 글 읽기로 보자면, 이 시국에서 '칼의 노래를 읽어 좋을 또다른 사람은 시민들이다.
어제 사무실을 방문했던 어느 총선 출마 희망자의 명함 뒤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며 적시되어 있던 문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에 따르면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그들이 주권을 위임해 준 중앙 권력과의 소통에서 막혀 있으며 그것에 의해 배반당하고 있다.
그런 상황은 시민들을 분노케 하거나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충무공이 느꼈을 것과는 성격상 다를지 몰라도 '절망까지 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배반당한 주인들, 권력을 위임해 주고 나니 쓰레기처럼 짓밟혀버린 진짜 주인들, 그래서 종국엔 권력을 찬탈당하고 만 시민들. 일제의 만주판 꼭두각시 되기를 선택한 뒤 당했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의 처절한 신세까지 떠올리게 하는 상황. 충무공의 순국에 대해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는 해석까지 있었음이 생각 나 더 섬뜩하다.
마지막 왜적까지 다 무찌르고 돌아가 봐야 자신은 여전히 배반당해 있을 것으로 절망하고 있었으리라는 추론에 바탕한 해석이었던가 싶다.
배반의 절망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시민들은 충무공 시절의 '백성들과는 확실히 다름을 필자는 믿어가고 있다.
시민들은 다시 주인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고, 기필코 그 일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반의 요술에서 빠져나오고 있음이 무엇보다 반갑다.
인터넷에는 온갖 상반되는 의견들과 욕설까지 난무하고 있으나, 많은 시민들은 그게 어떤 삿된 무리들에 의해 조작되고 있을 개연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치꾼들의 이전투구에 부화뇌동해 휩쓸리는 시민이 줄고, 대신 시민 자신의 이익을 별도로 챙기기 시작한 사람이 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시민 자신들의 이익은 무엇인가? 특정인이 아니라 나라에 득되는 것이 시민의 이익이다.
자신은 물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이런 혼란을 겪지 않고도 편히 살 수 있도록 바로 세워지는 역사가 시민의 이익이다.
그것은 탄핵 사건의 시비를 가리는 정도의 입방아 찧기와 휘말려 싸우기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은 곳에 존재한다.
◇시민혁명 직접 이끌어내야
더불어 현 시국을 남의 일 보듯 영화 구경하듯 하는 사람이 감소한 것도 희망적이다.
어떤 매스미디어는 마치 축구 경기 얘기하듯 '관전 포인트라는 안내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런 태도로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런 정국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음을 시민들은 알게 된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문제가 생긴다 해도 석유 수급상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하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팔레스타인 사태 진전조차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서는 제대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상황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나 자신의 일이고 내 아들딸의 일임을 알아 엄중하고 엄중하게 상황을 짚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어느 조사에서는 한달여 뒤의 총선 투표에 참가하겠다는 사람이 70%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반갑고 반가운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시민혁명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며, 꾼들의 요술 장난에 깨춤을 추고 있지 않을 것이며, 선동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며, 나라의 먼 장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예지를 가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종봉(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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