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아직 내 체온 식지 않은 풀씨를

창 앞에 뿌려두고 새를 기다린다

늙은 참새 한 쌍 날아와

마음놓고 체온을 다 주워 먹었다

따사한 정에 허기를 면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

얼마간 졸다가 구름밭을 지나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

지금 창 앞에는 새가 두고 간

사랑이

풀잎으로 자라가고 있다.

황금찬 '사랑이 자라는 뜰'

살아가면서 정말 특별하고 신비로운 일은 전부 평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겨울이 그렇게 기승을 부리며 절대로 봄이 오도록 해 주지 않을 것 같더니 어느 새 우리는 봄의 한쪽 자락을 밟고 있지 않은가?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리는 계절이 된 것이다.

창 앞에 풀씨를 뿌려두고 새가 날아와 그걸 쪼아먹는 걸 보며 경이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노(老)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한 새가 먹다 남긴 풀씨에서 싹이 돋는 것조차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적고 있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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