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선 실패 쓸쓸한 퇴장

YS와 DJ에 이어 '마지막 3김'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가 19일 총재직 사퇴 및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35세때인 지난 61년 처삼촌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며 한국 정치사 전면에 등장한 이후 '마지막 3김'으로 남았던 그가 결국은 마지막까지 미련을 갖던 '10선고지'를 달성하지 못한 채 쓸쓸히 정치를 떠나게 된 것이다.

JP는 3김씨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을 하지 못했다.

영원한 2인자였다.

5.16 쿠데타로 등장한 그가 43년간의 정치인생을 접는 날은 우연히도 4.19 혁명 44주년 기념일이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케 했다.

김 총재는 61년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40여년간 '자의반 타의반' 외유, 정치 규제, 3당합당과 민자당 탈당, 자민련 창당, 공동정권 파기, 16대 총선 참패 등 숱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정치적 입지를 유지해왔다.

물론 김 총재가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충청권이란 텃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번 JP에게 충청권은 아낌없는 지지를 해주었다.

이번만은 예외였지만.

김 총재는 지난해 10월 자민련이 충청지역 기초단체장 재.보선에 모처럼 승리, 원내교섭단체 복원을 꿈꿨지만 '탄핵폭풍'에 치명타를 맞으며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렸다.

더욱이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자기 자신 조차 낙선하면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결국 퇴장으로 내몰린 것이다.

한편 43년간 기나긴 정치역정 동안 JP는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달리 1인자가 되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로 정치역정을 마무리 하게 된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그의 독특한 캐릭터를 요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 '올인'의 승부수를 던진다면 '중용'을 강조하는 JP는 항상 장고(長考)와 신중함을 견지해 왔다.

그 결과는 정치생명은 오래 유지했지만 킹이 아닌 영원한 킹메이커로 묶어둔 셈이다.

5.16 쿠데타 이후 국무총리 두번, 집권당 총재, 대표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뒤 10.26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11, 1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가 87년 양김씨와 함께 대선에 출마, 정치전면에 나서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듯했다.

이어 88년 13대 총선때 신민주공화당으로 충청권을 석권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지만 90년 3당합당 카드를 받아들이면서 또다시 '영원한 2인자'로 자족하게 됐다.

또 그동안 수도 없이 합의를 했던 내각제 개헌 약속은 번번이 휴지 조각이 됐다.

그는 최근 당 안팎의 퇴집 압력에도 양김이 이루지 못한 10선 고지를 달성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이런 JP의 소망을 순순히 허용하지 않았다.

김 총재는 19일 오전 당사에서 "패전의 장수가 무슨 말이 있겠느냐. 모든 게 저의 부덕한 탓"이라며 "오늘로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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