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선보여

전주국제영화제가 해마다 기획 제작해 상영하는 특별프로그램 '디지털 삼인삼색'이 24일 오후 덕진예술회관에서 선보였다.

올해는 봉준호(35)의 '인플루엔자', 유릭와이(38)의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이시이 소고(47)의 '경심(鏡心)' 등 한국·홍콩·일본 대표감독의 중편을 모았다. 디지털이라는 형식을 제외하고는 각기 다른 주제와 소재를 택하고 있으나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인플루엔자'는 평범한 시민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한강 다리, 지하철역 화장실, 지하철 플랫폼, 주택가 골목, 은행 창구, 현금인출기 부스, 지하주차장 등의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화면으로 구성한 작품.

생활고에 허덕이는 30대 남자 조혁래는 지하철에서 순간접착제를 팔기 위해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호객행위를 연습한 뒤 지하철에 오르지만 경비원에게 끌려나온다. 허기를 메우기 위해 골목길 쓰레기를 뒤지던 그는 현금인출기 부스에서 강도짓을 벌이는가 하면 주차장에서 무지막지한 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생활고에서 비롯된 조혁래의 폭력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전이돼 급속하게 번져나간다.

'살인의 추억'으로 흥행감독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학부모들이 집에서 수업장면을 볼 수 있도록 CCTV가 설치된 것을 보고 아이를 감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면서 "처음에는 페이크(가짜) 다큐멘터리로 꾸미려고 했으나 촬영이 진행되면서 폭력 드라마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의 무대는 가상의 도시 플라스틱 시티의 지하 호스텔. 혹독한 추위로 땅 위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곳의 문지기는 맥주 캔을 모아 생계를 잇는다고 해서 기린이라 불리는데 댄스홀에서 커플들의 춤을 지켜보다가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불법 이민자 란란을 만나게 된다.

'천상인간'의 연출자이자 지아장커 감독의 촬영 파트너로도 이름난 유릭와이 감독은 "무성영화에 대한 헌사(오마주)를 바치고 싶어 최첨단 기기인 디지털 카메라로 무성영화를 찍었으며 카메라 앞에 돋보기를 들이대거나 후반작업 때 초점을 흐리게 하는 방법으로 옛날 필름의 질감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경심'은 시나리오를 쓰는 여배우의 신비한 경험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마음 속에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려 힘들어하다가 거리에서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외로운 여인을 만나게 되고 영화 일을 벗어나 동남아로 여행을 떠난다.

'역분사 가족', '물 속의 8월', '꿈의 미로' 등의 작품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이시이 소고 감독은 "전주영화제의 제의가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주최측에 감사를 표시한 뒤 "최소한의 배우와 스태프로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지 충분한 실험을 했고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26일 오후 5시와 28일 오전 11시 덕진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더 상영된다.(전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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