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대통령 집권2기 출발부터 '삐끗'

고건 총리 사표 제출 파문

고건(高建)총리의 각료제청권 거부로 조기개각이 무산되면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집권2기 국정운영구상에 적잖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조기개각을 통해 여권내 역학구도를 정리하고 탄핵기간 이완된 공직기강을 추스르면서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을 출범시키려던 노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개각대상으로 거론된 통일부와 복지부, 문화관광부 등 교체가 확정된 3개부처는 앞으로 최소한 한달 이상은 '교체예정장관'을 모시고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달 후면 나갈 장관의 지시가 제대로 먹혀들리가 없다.

25일 노 대통령이 고 총리의 사표를 즉각 수리함에 따라 후임총리 인준 때까지 상당기간 국정혼선이 노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노 대통령이 조만간 한나라당 등 야권이 반대하고 있는 김혁규(金爀珪) 전 지사를 총리후보로 지명할 경우, 총리인준을 둘러싼 논란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가 총리권한대행을 수행하는 대행체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노 대통령으로서는 역동적으로 집권2기를 시작하려던 참에 스스로 총리의 각료제청권행사에 대한 헌법정신을 훼손하려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출발점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는 점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들어 강조해오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조기개각을 밀어붙이려고 고 총리를 압박까지 하는 모양새를 갖췄다는 점에서 과반수 집권당의 '힘의 정치'가 출발점에서부터 일그러졌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조기개각 무산파문의 발단은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에 있다.

청와대 스스로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존중하거나 퇴임하는 고 총리를 배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찬용(鄭燦龍) 청와대 인사수석이나 김우식(金雨植) 청와대 비서실장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고 총리를 압박하는 데 앞장섰다.

"총리의 제청은 인사절차에 불과하지 않느냐"며 평가절하하는 발언도 나왔다.

정 수석은 3개부처 장관의 경질사유에 대해서도 "경질사유가 아닌 인사사유가 발생했다"면서 통일부장관을 왜 교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알아서 해석해 달라"고 말했다.

시급한 개각사유는 없지만 차기대권구도를 두고 경쟁하는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의 동반입각을 위한 정치개각이었던 셈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총리의 각료제청권'이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하려 했다는 정치적 부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통일부 장관자리를 둘러싼 정, 김 두 사람간의 갈등양상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노 대통령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됐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사진 : 노무현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국무회의에서 개각을 하더라도 통일.문화관광.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에 한정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하고 다른 부처는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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