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지정

북한과 중국에 위치한 중요한 고구려의 역사문화유적들이 6월 28일부터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제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일람표에 등록한 문화재'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번의 조치는 곧 고구려유적이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가 세계로부터 공인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우리 한국의 경우 석굴암.불국사 등 세계문화유산 7종, 훈민정음 등 세계기록유산 3종, 판소리 등 세계무형유산 2종이 이미 등재되어 있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만시지탄의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고구려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한민족 고대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세계 만방에 과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민족 모두의 경사라고 해도 좋다.

다만 고구려유적은 북한과 중국의 두 나라의 유적으로 나뉘어져 등록될 것이다.

북한이 '고구려고분군'이라 하여 평양.남포.안악 등지의 63기의 고분에 대해 등록을 신청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귀족무덤'이라 하여, 국내성 등 왕성 3개소, 광개토왕릉비, 태왕릉 등 왕릉 13기, 무용총 등 귀족무덤 26기 등을 신청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 중국이 고구려유적을 자기 나라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했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독자도 있을 법하다.

이는 중국이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 역사를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의도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근래 중국측은 고구려.발해사는 물론 그 이전의 부여사와 고조선사까지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억지 주장을 펴면서, 그 일환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환인과 집안지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해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전개하고 이들 유적을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였고, 이 역시 무난히 등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구려유적의 보존과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장차 우리가 깊이 유의하여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 고구려 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은 물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먼저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 중에는 내부에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벽화무덤이 많다.

물론 무덤 속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 고구려 고유의 풍습은 아니지만, 고구려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는 그 생생한 화면이 보여주는 역사성과 예술성, 독창성과 정교함에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풍속도.사신도(四神圖).장식그림 등 다양한 내용을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은 물론 그들의 영혼관이나 세계관, 나아가 천문도가 보여주는 그들의 과학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일급의 사료이기도 한 것이다.

또 무려 6.3m에 달하는 한 개의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광개토왕릉비는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거니와, 4~5세기 동아시아사를 해명할 수 있는 최고의 일차 사료이며, 국내성과 환도산성 등 왕성 유적은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는 고구려 도성제도를 말없이 전하고 있는 실물자료이고, 태왕릉과 장군총 등의 왕릉은 그 규모와 건축술 면에서 동북아시아의 피라미드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이와 같이 규모와 내용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고구려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고구려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 우리에게는 인류 모두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구려유적을 더욱 아끼고 보호하여 후손만대에 영원히 물려주어야 하는 무거운 의무가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북한과 중국에 위치한 고구려유적의 보전에 우리의 힘을 보태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문기(한국고대사학회 회장.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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