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소 천사' 대구 오페라하우스 도우미

함빡 웃었다.

뽀얗고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웃음은 출입문을 거쳐 로비를 지나 객석까지 울려 퍼졌다.

소리없는 환한 미소였다.

가벼운 인사말도 주고받았다.

그 웃음과 인사말은 귀청과 가슴을 울려 공연 내내 이어졌고, 문 밖을 나올 때까지 여진(餘震)이 남아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 가면 즐겁다.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도우미들의 환한 미소와 친절한 안내 때문이다.

안내도우미 최현숙(30)씨는 공연 3시간 전부터 정신없다.

수백 수천명의 관객을 맞기 위해서는 복장과 얼굴표정 등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볍게 화장을 하고, 검은색 정장과 스카프 등 옷매무시에 신경쓰고 혼자서 거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수차례 던진 뒤에야 집을 나선다.

공연 두시간 전, 매니저로부터 공연 브리핑을 듣고 사전교육을 받는다.

드디어 관객들이 밀려들 시간. 객석, 화장실, 출입문 표검사 등 각자 맡은 위치로 흩어지는 다른 도우미들처럼 최씨도 로비에 자리를 잡는다.

객석 위치를 묻는 사람, 입장권없이 팜플렛을 들고 가는 사람, 자녀를 입장권 없이 데리고 온 사람, 술냄새 풍기는 사람 등등. 숱한 사람들과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투는 몸에 배인 기본 매너다.

네댓 시간을 관객들과 부닥치며 진을 뺀 뒤 뒷정리를 끝낸 후에야 커피 향을 맡으며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최씨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2003년 대구 하계U대회 자원봉사활동에 이어 이번에도 수많은 관객 속으로 들어왔다.

최씨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데다 미소와 친절이 관객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때의 보람을 생각하며 도우미를 자원했다"고 말했다.

대다수 30, 40대 주부들로 꾸려진 대구오페라하우스 안내도우미 35명은 지난 2월부터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마흔 아홉 차례 공연에 관람인원 4만3천여명을 별 탈없이 소화했다.

관객 남인숙(38)씨는 "오페라 공연을 볼 때마다 안내 도우미들의 친절함에 기분이 상큼해진다"며 "서비스 수준이 외국 못지 않다"고 말했다.

도우미들의 다양한 경력도 원활한 공연 진행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 5월 '대학오페라축제'때 공연 리허설을 하던 한 여대생이 갑자기 쓰러졌다.

밥도 먹지 않고 무리하게 연습하고 긴장한 탓에 탈진한 것. 간호사 출신 도우미 박정남(42)씨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주변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여대생을 반듯이 눕힌 뒤 벨트를 풀어주고, 머리를 낮추고 다리를 올리는 등 발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한 것이다.

중환자실 수간호사 20년 경력의 박씨 덕분에 119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여대생은 깨어났고, 공연은 무사히 진행됐다.

박씨는 "도우미들의 자그마한 봉사가 매끄러운 공연진행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했다.

항공사 근무경력이 있는 배윤희(33)씨는 능통한 외국어 구사로 외국인들의 불편함을 덜어준다.

배씨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관객들을 더 편하게 하는 것같다"고 했다.

도우미 '큰 언니' 김영옥(49)씨는 가끔 눈이 휘둥그레져 나이를 묻는 관객을 만나곤 한다.

전화국에서 24년동안 114 안내를 맡았던 김씨의 상냥한 말솜씨에 놀란 탓이다.

퇴직한 지 꽤 됐지만 베테랑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항공사 승무원 교사 간호사 방화관리사 유치원 보육교사 모니터요원 등 도우미들의 풍부한 사회경험과 경력은 오페라 공연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이 도우미들의 활동에 항상 부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안내방송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휴대폰 소리를 울려대거나 극장에서처럼 소리를 내며 빵 우유 사탕 과자 등을 먹는 '꼴불견' 관객들도 가끔 있다.

공연도중 플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거나 취기에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을 추스르기란 도우미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로비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거나, '화장실이 급하다'며 오페라하우스에 들어왔다 표도 없이 공연장으로 직행하는 사람도 있단다.

항상 관객과 다투지 않고 잡음이 나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미소로 달래고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우미들은 매끄러운 공연을 위해 관객들에 대한 바람도 잊지 않았다.

배윤희씨는 "관객들이 공연시각을 꼭 맞춰줬으면 한다"며 "늦게 입장한 뒤 공연 도중 1, 2층으로 억지로 들어가려고 할 때 다른 관객들을 위해 불가피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중고교에서 음악수행평가를 위해 학생들을 공연장에 보낼 때 미리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줄 것도 주문했다.

안내도우미들은 그러나 힘들고 고달프기보다 보람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김가영(40'가명)씨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엄마가 공연장 안내도우미라며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때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보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시각장애인 몇명을 안내한 적이 있다"며 "이들이 다음 공연에 또 찾아온 뒤 안내에 만족할 때 너무 힘이 났다"고 말했다.

최현숙씨는 "시골에서 올라온 노부부에게 깍듯이 인사했더니 '너무 친절하고 예쁘다.

며느리 삼고싶다'고 했을 때 즐거웠다"고 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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