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현상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한다/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내가 바라는 것만 찍어주는 고장난 사진기였음을/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리 못하고 들고 다닌다//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신경림의 '고장난 사진기'는 범상하지 않은 일깨움을 안겨주는 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장난 인식안(認識眼)에 대한 자기 비판을 하고 있는 이 시는 난세의 담론들이 어지럽게 춤추는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덥고 우울한 지금 가는 곳마다 힘들고 어지럽다는 소리가 높다.
'자기 허물은 백사장에 새기고, 남의 허물은 금강석에 새긴다'는 말 그대로, 그 어려움들이 거의 '내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려진다.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자신의 블랙홀 이론이 틀렸다며, 29년 전 내기한 라이벌 학자에게 패배를 인정해 과학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그가 21일 한 국제회의에서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라는 연구 논문을 통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는 방출될 수 있다"며 자신이 1975년 발표한 이론을 180도 뒤집었다고 전했다.
▲당시 논문에서 블랙홀 부근에는 '사건 지평선'이란 영역이 있어 거기 들어간 물질과 그 물질에 대한 정보는 그곳에 갇혀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한다고 주장했었다.
이 빛이 이른바 '호킹 복사'다.
그러나 이번 학회에서 그는 그 질량 에너지가 뭉개진 채 되돌아온다며, 이 같이 수정한 대가로 상반되는 이론을 폈던 미국의 존 프레스킬 교수에게 약속대로 야구백과사전을 선물로 전한 모양이다.
▲호킹 박사의 이번 뒤집기는 패배로 보이기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또 다른 승리'로 보인다면 비약일까. 우리는 지금 '나만 옳다'가 야기하는 온갖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안한 상태에서 저마다 자기가 바라는 것만 사진기에 담으려 하며, 바라던 것만 찍혔다는 '자기 기만'에 빠지거나 바라지 않던 것만 찍혔다고 불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닐는지…. 이태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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