빳빳한 삼베옷의 풀이 꺾이듯 찜통더위도 어느새 한 풀 꺾였다.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본격적인 찬바람이 불면 무더위로 잃었던 미각도 돌아온다. 식보(食補). 보약이 따로 없다. 잘 먹는 게 보약이다. 그래서 인지 뭔가 화끈한 맛이 당긴다. 아니다. 소찬이라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먹을거리라도 있으면 좋겠다. 참 간사한 게 혀다. 이랬다, 저랬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미각의 변덕도 우리 몸이 활력충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얼얼하게 매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낙지볶음이나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의 좁은 나무의자에 앉아 국수에 말아먹는 소구레 볶음 한 점이 더 맵고 더 구수한 것은 미각세포가 최대로 긴장해 있는 탓이 아닐까.
★낙지볶음 세트
'더위로 탈진한 소에게 낙지 몇 마리를 먹이면 바로 일어난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씹는 맛이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낙지는 피로와 원기회복에 좋은 타우린이 풍부하며 소화흡수가 잘 된다.
중구 삼덕1가 옛 동인호텔에서 삼덕 소방서 가는 길에 있는 '별주부'. 주인 서성교씨가 최근 맛의 화두인 매운 맛을 찾아 10개월간 전국투어 끝에 만들어 무료 시식회의 검증을 거친 낙지볶음 세트를 내놓고 있다.
먼저 주방에서 8가지 채소와 잘 손질된 낙지에 20가지 재료로 맛을 낸 매운 양념을 넣고 센 불로 볶은 다음 손님상에 내는 이 집 낙지볶음은 따라 나오는 쫄면에 비벼 먹는 것이 특징이다. 몇 번 젓가락이 오가면 혀가 화끈거리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맵다. 이때는 나박김치국물과 콩나물국물로 매운 맛을 달래준다.
이렇게 매운 맛과 전쟁을 치르다 보면 볶음 솥에 바닥이 보일 때 쯤 김, 콩나물, 미나리를 다시 넣어 공기밥을 볶는다. 꾹꾹 눌러 준 볶음밥은 잠시 기다리면 밑 부분에 약간 누룽지가 생기면서 고슬고슬 익는다. 이를 빈 공기에 덜어 먹으면 별미다.
이 정도면 배가 부를 만 한데 아직 장미냉면 한 그릇이 남아 있다. 얼음이 둥둥 뜨는 냉면은 면이 녹색이다. 시원한 육수와 담백한 면발이 지금까지 매웠던 맛의 기억을 지우기에 딱 알맞다. 이 집에선 낙지볶음 외 찜과 전골도 준비돼 있다. 낙지볶음 세트 2인분 1만 4천원. 문의:053)255-8292
★소구레 볶음
"고기가 귀하던 시절 소를 잡은 뒤 남은 소 껍데기로 술안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서 집에서 하던 대로 양념을 해 팔았던 게 오늘까지 하게 됐지."
88고속도로 고령IC에서 좌회전, 10분정도 달리면 나오는 고령 장터. 이 곳 초입에서 47년째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으로 국수를 말고 술안주감인 소구레 볶음을 팔아 온 '고령 할매국수집'의 최순덕(75) 할머니. 언제부턴가 이집 잔치국수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인근 장꾼들이 꼭 한번은 들르는 고령장의 명소다.
아무렇게나 마는듯한 잔치국수(2천원)나 선지국에 국수를 넣고 소구레 볶음을 얹어 내놓은 소구레국수(3천원)가 시골장터의 분위기와 어울리면서 그 맛이 달다.
그러나 뭐니뭐 해도 최할머니의 손맛은 소구레 볶음에 있다. 갖은 양념에 볶아내는 매콤한 소구레는 씹을수록 쫄깃하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군데군데 박혀 있는 선지덩이도 또 다른 맛이다.
소구레 볶음이 이런 맛을 내기 위해서는 손질이 많이 간다. 잔털과 거친 겉껍질을 제거하려면 여러 번 씻는 것은 물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많이 치대줘야 한다. 이 힘든 일은 며느리 이복연(52)씨 몫이다. 그리고 나서 잘 손질된 소구레를 끓는 물에 30, 40분간 삶아 적당량씩 나눠 냉장 보관한다.
시골장의 매력은 볼거리에도 많다. 옛 모습 그대로의 대장간, 며칠 보지 못했던 이웃끼리 안부 인삿말, 물건 흥정, 촌로 앞에 놓인 텃밭채소들, 이것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고령장은 4일과 9일장이다. 문의:054)955-2494
우문기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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