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 생존 확률 50:50

마틴 리스 지음/이충호 옮김/소소 펴냄

"인류가 21세기 이후 살아남을 확률은 50:50이다.

" "2020년 이전에 세균으로 인해 100만명 이상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

이러한 예언을 들고 나온 사람은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단체의 교주가 아니라,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이다.

마틴 리스. 케임브리지대학의 왕립학회 교수이자 영국 왕립천문대장인 그는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넓히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한 천체물리학자로 꼽힌다.

그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21세기라는 지뢰밭'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

마틴 리스의 저서 '인간 생존 확률 50: 50'은 인류 앞에 놓인 여러 범주의 위협 요인에 대한 묵시론적인 성찰서이다.

테크놀로지는 양날의 칼이다.

축복이지만 저주일 수 있다.

인간의 야만성과 무지가 테크놀로지와 결합됐을 때 그 칼은 인류를 겨누게 된다.

최악의 재앙들은 홍수, 지진, 화산, 태풍과 같은 자연 역병에서 시작됐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각종 국지전, 학살, 박해, 기아로 1억8천700만명이 죽었다.

자연재해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과 전체주의 정권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았던 시기는 20세기가 처음일 것이다.

베트남전 때 미국 고성능 전투기 추락의 첫번째 원인은 베트콩이 갈겨댄 소총 사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초음속 최신예 전투기는 총알에 잘 맞지 않지만, 일단 맞았다 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비행 몸체 곳곳을 연료통으로 활용하고 있는데다 초정밀 칩으로 도배돼 있기 때문이다.

구식 프로펠러 비행기의 경우 성능은 떨어지지만 엔진 등 핵심 부품에 손상을 입지 않는 한 총을 맞더라도 당장 추락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고성능 제트기는 현대 사회와 닮았다.

사회 시스템이 발전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변해갈수록, 작은 리스크가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은밀한 행동이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거나 사이버 공간의 기능 장애가 세계적인 항공·발전·금융 시스템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유전학이나 세균학,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을 쌓은 개인이 일으킬 수 있는 파괴적 능력도 커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만일 연쇄 살인마 유영철 같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세균 제조법을 내려받는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핵 무기나 탄저균 제조 기술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과 크기만한 농축 우라늄 두 덩어리가 9·11 때 뉴욕에 떨어졌다면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물론 원자폭탄은 아주 정밀하게 조정된 뇌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개인이 제조하기 쉽지 않지만, 재래식 폭탄의 바깥면을 플루토늄으로 코팅한 일명 '더러운 폭탄'(Dirty Bomb)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러운 폭탄은 방사능 누출로 인한 장기적이고도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킨다.

도덕성이 결여된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종말로 내 몰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는 많았다는 점에서 마틴 리스의 예언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테러보다 오히려 '에러'가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신선하게 들린다.

과학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단 한번의 사소한 실수가 인류 전체를 치명적인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일깨운다.

유전자 변형 생물이나 바이러스가 과학자의 부주의 때문에 실험실 밖으로 유출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또한 입자가속기 실험 과정에서 엄청난 밀도를 지닌 원자핵이 초미니 블랙홀을 만들어 자칫 지구나 심지어 우주 전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제로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를 늦추고 과학자 스스로 위험성이 있는 실험을 자제하며 핵테러와 에러, 바이오 테러와 바이오 에러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기술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료들과의 내기에서 저자는 2020년 이전에 바이오 테러 혹은 바이오 에러에 의해 100만명 이상의 인간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걸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1천달러를 잃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가 내기에서 잃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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