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새롭게 만나는 명절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4학년이 되고 나서 부쩍 책읽기와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최근에는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써본다고 야단법석이다.

가끔 집에서 쉬노라면 어떤 주제가 좋겠는가, 이런 표현은 너무 바보스럽지 않은가, 그 사건의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에 아이 엄마가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딸아이가 쓴 글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이 글은 나로 하여금 명절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가을의 중심에는 추석이 있다.

내가 신나하는 것은 바로 추석 때 서울, 친할머니 댁에 가서 추석을 보낸다는 것이다.

해마다 친할머니 댁에 가면 나와 동갑인 당고모 유경이도 만날 수 있을 뿐더러 우리 가족과 친한 큰 아버지 가족도 볼 수 있어서 나는 잠시나마 틀에 박혀 있는 지겨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불공평한 일이 있다.

바로 여자들과 남자들이 추석에 하는 일에 대한 문제이다.

여자들은 불쌍하게도 평소에 많이 했던 음식 만드는 일을 또 한번 해야 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한다.

난 이 점이 맘에 안 든다.

요번 추석부터는 남자들이 쭉 계속 일하고 여자들은 누구 눈치 하나 안 보고 편하게 쉬었으면 한다.

만약 여자들이 손이 근질근질해서 일 하고 싶을 때만 빼고는."

이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딸아이에게는 친척들을 만나 즐겁게 노는 것이 추석의 최대 기쁨이다.

파주, 서울, 대구 등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아이들은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명절 때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나면 금방 함께 사는 형제자매처럼 친밀한 사이가 되어 뒹군다.

맛난 음식을 준비하여 차례를 올리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즐기는 가운데 우리가 한 할아버지 자손임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해마다 귀향의 고통이 더욱 가중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욱 고향의 명절을 그리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명절이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딸아이가 지적한 것처럼 그동안 우리 가족의 명절은 부끄럽지만 여성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온 가족이 모여 정담을 나누는 따뜻한 민족의 축제'라는 명절의 이미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66%가 '명절은 노동절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최근에는 남성들의 가사노동 분담이 늘어나고 있지만 명절엔 친지들 눈치 보느라 선뜻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명절계획, 장보기에서 음식 만들기는 물론 식사준비와 설거지까지 명절가사노동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이 때문에 명절만 다가오면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핵가족화된 가정의 주부들이 명절 기간 동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대가족제도에 합쳐지면서 정신적 부적응상태를 겪는 것이다.

명절이 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현재 명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차례 문화에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차례 문화는 반드시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례(茶禮)란 글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식이다.

조선에 본래 차례라는 것은 없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사람들은 명절을 지낼 때 선조에 대한 존숭 행위가 없는 것을 점차 불편하게 생각하여 간단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에 차례라는 명칭을 차용했다.

조선의 차례는 차를 쓰지 않고 술을 올렸다.

그러나 차례는 본래 예제에 있는 제사가 아니기 때문에, 술을 올리되 한잔만 올리며 음식도 간소하게 하는 등 매우 간략한 제사 형태를 띠었다.

한편 제사도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반드시 아들만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딸에 의한 봉사 혹은 외손에 의한 봉사는 조선 중기까지도 사대부가에서 적지 않게 실행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아버지의 제사를 자녀들이 순서대로 해마다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나 자손들이 조상의 제사 가운데 특정 제사를 나눠 맡는 분할봉사가 가능했다.

이처럼 차례는 조선 500년간 지속된 불변의 관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형성되어 뒤늦게 명절 행사의 하나로 들어온 것이다.

조선의 제사문화 속에는 고단함을 나누어 반이 되게 하고 풍성함과 여유로움을 나누어 두 배가 되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의 차례 문화 역시 앞으로 새로운 형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자도 남자도 아이도 어른도 며느리도 딸도 아들도 모두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신나는 명절을 만드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살 만한 가정과 사회를 물려줘야 하는 우리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명예로운 책무이다.전현수(경북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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