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수성여중 또래 상담반

"우리 고민 우리끼리 풀어요."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럴 때 비슷한 정서와 생각, 고민을 가지고 있는 또래가 건네주는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대구수성여자중학교 또래상담반. 지난 1학기 상담훈련을 받은 17명의 학생이 9월부터 본격적인 상담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고민 해결사'라기보다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는 친구'다.

◇고민 나누기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부모님이 자주 다퉈 집을 나가고 싶어요", "나를 이해해줄 친구가 없어요."

학업, 친구, 이성, 진로…. 청소년이면 누구나 해보는 고민라고들 하지만 당사자들은 절실하기만 하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이럴 때 또래상담자는 가장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상담자며 친구다.

고민에 대한 해답을 곧바로 얻기는 힘들지만 또래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고민의 무게는 조금씩 줄어든다.

수성여중 또래상담반 학생들도 역시 똑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들이다.

때문에 전문상담에 비해 또래상담은 부담이 덜 간다.

또래상담의 핵심도 바로 친구 되어주기다.

박신영(1년)양은 "남보다 많이 알아야 상담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래상담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또래상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시청소년종합상담실에서 실시하는 상담교육을 받아야 비로소 상담자로 활동할 수 있다.

수성여중 또래상담반 학생들도 마찬가지. 평소 급우 사이에서 신임을 갖고 친화력과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담임교사로부터 추천받은 학생들이 지난 1학기 대구시청소년종합상담실에서 실시하는 상담교육을 받았다.

이런 또래상담은 지난 1994년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시작돼 전국 초·중·고교에서 1만여명이 넘는 학생이 또래상담자로 활동하고 있다.

또래상담은 교육현장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돼, 많은 학교에서 상담실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특별활동반의 하나로 운영하고 있다.

◇왕따없는 학교

"친구들과 친하지 못하고 늘 혼자 있는 친구들을 보면 먼저 말을 건네죠."

이지혜(2년)양은 또래상담자가 되면서 달라진 모습이라고 했다.

윤영실(2년)양도 "친구들의 사소한 고민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했다.

또래상담의 장점은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또래상담자들은 고민이 있어 상담하러 찾아오는 친구들을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상담이 필요한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심하게 꾸중을 듣은 친구, 결석이 잦거나 밥을 혼자 먹는 친구들은 이내 이들의 관심권에 들어온다.

신지윤(2년)양은 "평소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며 "말을 나눌 친구도 없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관심을 보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활기찬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채팅이나 메일 등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무슨 상담하러 왔냐며 핀찬을 듣기도 하고, 또래끼리 상담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쑥쓰러워하는 바람에 상담이 이뤄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더 좋은 조언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윤지영(1년)양은 "어떤 부분이 서툴렀고 왜 편하게 못 다가갔는지 등을 반성하게 된다"며 "책을 보기도 하고 전문상담자의 조언을 듣는 등 친구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더 애를 쓴다"고 했다.

또래상담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목적이다.

다가가서 친구가 되고 공감하는 것이 최고의 역할이다.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넘어서기 어려운 대화의 장벽이 쉽사리 허물어지기도 한다.

유화옥 상담교사는 "교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관심을 쏟고 친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도우미"라며 "때로는 전문상담원과 친구들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상담 때 가장 큰 원칙은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 물론 상담을 끝낸 후 비밀 유지는 철칙. "고마웠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는 최고의 보람이다.

"왕따 없는 학교, 우리들의 활약에 달렸죠." 이들의 밝은 미소가 학교 구석구석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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