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 총리와 '치욕의 거리'

"게으른 농부 밭의 조 대가리는 바람이 불어도 꼿꼿하고 부지런한 농부 밭의 조 대가리는 바람이 불면 끄덕끄덕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부지런한 농부 밭의 조 대가리가 됩시다."

선교사로서 대학총장까지 지냈던 아펜젤러 여사가 한국의 젊은 학생들에게 호소했다는 연설의 한 토막이라고 한다.

한국어가 서툴다보니 '조 이삭'을 '조 대가리'로 표현한 것이지만 말의 참뜻은 조 대가리가 되라는 속된 의미가 아니라 벼 이삭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뜻처럼 겸양과 속깊은 사람의 처세를 가르친 뜻이리라. 굳이 한번 더 풀어서 말하자면 부지런한 농부는 거름도 많이 주고 김도 자주 매니까 그런 좋은 밭에서 자란 조는 이삭이 충실하게 영글어 묵직하게 고개를 숙이게 되니 바람이 불어도 끄덕 끄덕할 뿐 가벼이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는 의미일 테고….

반대로 거름도 제대로 안준 게으른 농부 손에 자란 조는 이삭도 부실하고 겉자라서 바람이 불어도 고개를 쳐들고 서있다는 뜻인데…. 스승이 젊은이들에게 부지런한 농부밭의 조 이삭이 되라고 가르친 뜻은 곧 제대로 교육받고 잘 자란 인재라면 익은 조 이삭처럼 처신하라는 가르침인 셈이다.

언론사 비하 발언으로 국회를 2주 동안이나 헛돌게 했던 이해찬 총리의 처신을 보면서 왜 하필 '조 대가리 연설'이 생각났는지 필자도 스스로 궁금하다.

그러나 얼핏 짐작컨대 제편인 여당의원들과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사과해 버려라고 권고해도 계속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열사흘을 버티다 겨우 부하직원 시켜서 성명서 한장 대독시키고 끝내는 옹색스런 모습때문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총리가 성장해온 정치적 토양과 운동권이란 밭이 부지런한 농부 밭인지 게으른 농부의 밭이었는지는 논할 뜻이 없다.

다만 한 국가의 두번째 통치권자로서 이왕이면 잘 익은 조 이삭처럼 묵직하고 속깊은 큰 그릇으로 웬만한 정치바람쯤 끄덕끄덕 고개 숙여 흔들려 주면서 국사를 헤쳐나가는 비범한 매력을 기대할 뿐이다.

지금 이 총리가 온몸을 던져 몰입해야 할 주제는 야당'언론과의 오기싸움이나 사과 방식의 체면 챙기기가 아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이렇다.

우연히 필자는 이 총리가 문제의 발언을 했던 독일을 거쳐 이 총리가 다녀간 유럽지역을 유적 취재 차 열흘째 돌고 있다. 그래서 이왕 총리의 발언 얘기가 나온 김에 본란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독일 국경에서 한때 오랜 사회주의 국가였던 C국으로 넘어가는 도로의 별명을 아시는지.

필자가 들은 바로는 그 도로의 별명은 '치욕의 거리(Schande Straβe)'라 했다. 경제가 어려운 그 나라 젊은 여성들이 지난 여름 바캉스철 서유럽 부자나라 관광객, 아시아계 관광객 등을 상대로 길거리에 수㎞씩 늘어서서 호객행위를 한 데서 이름지어졌다는 것이다. 비키니 차림의 반나 여성들이 몸을 팔기 위해 길거리에 몇십리씩 줄을 서 있는 치욕스런 모습에서 도로 이름을 '치욕의 거리'라 부르고 있다는 것인데 아름답고 젊은 그들이 그 거리에 치욕을 참고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뿐.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없기 때문이다.

파이 생산과 크기는 제대로 늘리지 않고 갈라 먹는 크기만 키워오다 망한 사회주의 정치의 끝이 낳은 부끄러운 거리다. 총리가 유럽을 다녀갔을 때 '치욕의 거리'를 보거나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 귀국 후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어떤 일에 승부를 걸어야 할지를 새삼 느꼈을 터다. 신문을 욕하고 야당을 비하하는 일은 총리의 일감이 아님을 쉬 깨쳤을 거란 얘기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큰 감투를 썼으면 잘 익은 조 이삭처럼 고개도 감투 무게만큼 묵직이 숙이고 야당과 언론의 바람이 불거든 끄덕끄덕 흔들려 줘 가면서 이땅에 치욕의 거리가 생겨나는 실정(失政)이나 없도록 죽기 살기로 경제부터 챙겨야 한다. 이 총리가 좋은 의미의 '조 이삭'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