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제2차 한일협약 체결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광무' 9년 을사(乙巳)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조선은 외교권을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을사조약, 을사오조약, 을사늑약이라고도 하는 이 제2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은 몰락의 기운이 더욱 빨라졌다.

일본의 야욕은 같은 해 9월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서 러시아 세력까지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더욱 구체화됐다. 10월에 이미 보호조약 체결을 모의한 일본은 11월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파견했다. 이토는 고종 황제에게 일왕의 친서를 전달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내용이 중대했던 만큼 조정대신들의 반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이토는 협약 체결을 반대하는 대신들을 무력으로 위협했다. 일본 헌병 수십 명을 대동한 채 회의장에 들어가 대신 각각에 가부 결정을 강요했다.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을 제외한 나머지 대신들(을사오적)은 일본 측의 위협에 협약체결에 찬성을 표시했다.

조약체결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은 들끓었다.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통해 이를 규탄했다. 민영환 등은 조약의 부당성을 알리며 자결했고, 각지에서 의병(을사의병)들이 일어났다.본격적으로 시작된 친일매국의 역사, 끝나지 않은 그 역사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다.

▲1790년 독일 수학자, 천문학자 아우구스트 뫼비우스 출생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1933년 미국, 소련연방 승인 ▲1978년 소련, 중성자탄 실험 발표.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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